[김순덕 칼럼]의리없는 자 심판해달라…대통령의 ‘배신 트라우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2일 22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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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프랑스의 개혁안 글로벌 무대 환영받아도 좌파 지지세력에는 배신

메르켈 총리의 반역 없이 오늘의 독일 번영 가능했을까

“배신은 변화와 리더십에 필수” 대통령의 트라우마 극복 안 되나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배신의 정치’가 세계적으로 유행할 줄은 몰랐다. 지난주 뉴차이나TV가 유튜브에 올린 뉴스 제목이 ‘그리스 부채 위기, 치프라스의 배신?’이다. 국가부도 사태를 맞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추가 구제금융 대가로 긴축 개혁안을 요구한 채권단에 반대하자며 국민투표를 벌였는데, 정작 “반대한다”에 지지가 쏟아지자 더 센 개혁안을 제출해 그리스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낀다는 거다.

프랑스의 사회당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도 사회주의의 배신자로 간주된다. 지난달엔 의회를 거치지 않고 서비스산업 자유화법을 발표해 버렸다. 규제 철폐, 노동법 간소화 같은 전임 우파 정부에서 추진하다 막혔던 개혁을 밀어붙인다고 강성 좌파 의원들은 난리다.

치프라스와 올랑드가 지지 세력으로부터 ‘배신’ 소리를 듣는 정책은 글로벌 무대에선 ‘개혁’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2003년 독일 노동개혁에 나섰던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똑같은 비판을 받았다. 내 편이라고 믿었던 정치 리더가, 고통은 줄이고 혜택은 키우겠다던 공약을 뒤집고 시장 친화적 구조개혁에 앞장서다니 다음 선거에서 심판받아 마땅하다고 유권자는 주장할 수 있다. 슈뢰더가 개혁 2년 만에 앙겔라 메르켈 기민당 대표에게 정권을 잃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금 유럽의 돈줄을 쥐고 그리스와 프랑스에 긴축 재정을 강조하는 메르켈도 극적인 배신을 통해 우뚝 선 정치인이다. 동독 출신인 자신을 ‘나의 소녀’라고 아끼며 첫 통독 내각에서 여성청소년 장관에 발탁해준 헬무트 콜 총리한테 1998년 정치자금 스캔들이 터지자 “콜의 시대는 갔다”고 비난하는 글을 일간지에 기고해 당을 발칵 뒤집어 놨다. 결국 그는 정치 스승을 정계에서 몰아내면서 2000년 기민당 대표, 2005년 첫 여성 총리가 됐다.

지난해 84세의 노(老)정객이 회고록에서 “메르켈을 키운 것이 내 인생 최대 실수다. 내가 킬러를 데려왔다”고 고백한 걸 보면 배신의 트라우마는 쉽게 가시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메르켈에게는 구국의 일념이었는지 몰라도 콜의 눈에는 ‘자기 정치’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선거에서 심판해 달라” 같은 자살폭탄을 공개적으로 터뜨리진 않았다. 메르켈의 배신이 없었다면 기민당의 개혁과 집권, 그리고 오늘의 독일이 가능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지적한 6·25의 충격이 내게는 가시지 않는다. 측근에게 배신당한 부친의 기억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미국의 조직 컨설턴트인 제임스 크란츠는 배신을 조직 변화와 리더십의 필수 요소로 보았다. 시대와 환경이 변하면 제도 역시 변해야 한다. 개혁은 안온한 현상유지에 대한 배신이다. 리더가 새로운 비전과 개혁을 제시할 때 조직은 이를 배신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리더는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박 대통령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했을 때도 그랬을 것이다.

거꾸로 리더가 미처 보지 못한 진실을 알리는 행위가 배신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예수의 마지막 유혹’에서 유다를 배신자 아닌 하나님 뜻의 조력자로 해석했다. 그 신뢰를 저버린 행위가 더 큰 목적을 위한 ‘선한 배신’이라면 개인적 감정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게 크란츠의 지적이다.

문제는 배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다. 사람을 못 믿고, 사람과의 긴밀한 접촉을 꺼리고, 자신은 완벽한데 남들은 왜 의리를 지키지 못하는지 도덕적 심판과 경직된 사고에 빠지기 쉽다. 이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도 리더의 할 일이다. 해법은 정서적 접촉을 더 많이 하는 것이라는 크란츠의 보고서를 보면서, 나는 상처 깊은 대통령을 떠올렸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위헌성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야당과 합의 처리한 일에 대해서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했다고 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선거운동에 나선 것을 놓고 “당선 기회를 달라고 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만이 남았다”며 “배신의 정치를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해 달라”고, 사적 감정을 공적 복수로 풀겠다는 데는 백번을 생각해도 공감하기 어렵다.

대통령을 사리사욕 때문에 배신하는 정치인이라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는데 홀로 배신감에 떠는 대통령을 보고 싶지는 않다. 30년도 더 지난 과거사에 사로잡혀 누구도 어떤 말도 못하게 하는 대통령이라면 나라의 불행이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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