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오스, 그라시아스’ 피겨 여왕 김연아의 마지막 인사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5월 2일 06시 40분


1. 2008 베이징에서 열린 그랑프리 3차대회에서 연기하는 모습. 2.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안겼던 쇼트프로그램 007 메들리의 엔딩 포즈. 3. 2013 캐나다 런던에서 2년여의 공백을 깨고 화려하게 복귀를 알렸던 쇼트프로그램 뱀파이어의 키스. 4. 2014소치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전국남녀 종합선수권대회 모습.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1. 2008 베이징에서 열린 그랑프리 3차대회에서 연기하는 모습. 2.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안겼던 쇼트프로그램 007 메들리의 엔딩 포즈. 3. 2013 캐나다 런던에서 2년여의 공백을 깨고 화려하게 복귀를 알렸던 쇼트프로그램 뱀파이어의 키스. 4. 2014소치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전국남녀 종합선수권대회 모습.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 김연아의 발자취

‘록산느의 탱고’ 첫 시니어 데뷔부터 강렬
‘죽음의 무도-세헤라자데’ 첫 200점 돌파
‘본드걸’로 변신한 밴쿠버선 세계 신기록

2년 공백에도 보란듯이 세계선수권 우승
전 세계가 분노한 소치 은메달 뒤로하고
4일 은퇴 무대로 국내 팬들 사랑에 보답


‘여왕’이 떠난다. 이제 정말로 떠난다. 김연아(24·올댓스포츠)가 고국의 팬들 앞에서 의미 있는 현역 은퇴식을 치른다. 4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특설링크에서 열리는 김연아 은퇴 아이스쇼의 이름은 ‘아디오스, 그라시아스(Adios, Gracias)’. 스페인어로 ‘아디오스’는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이고, ‘그라시아스’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다. 팬들에게 ‘안녕, 고맙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2014소치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김연아가 온 정성을 쏟아 준비한 무대다. 이제 그 막이 열린다.

● 피겨 여자 싱글 사상 최초로 ‘꿈의 200점’ 돌파

김연아는 첫 등장부터 ‘여왕’이었다. 한국 동계스포츠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선사해왔다. 주니어 시절부터 이미 한국피겨스케이팅 역사에 새로운 발자취를 남겨왔고,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후에는 세계 피겨계에 ‘한국’과 ‘김연아’라는 이름을 깊이 아로새겼다. 시니어 첫 시즌 쇼트프로그램인 ‘록산느의 탱고’로 2007세계선수권에서 피겨 여자 싱글 쇼트 역대 최고점(71.95점)을 갈아 치운 게 그 시작이었다. 2007∼2008시즌에는 러시아에서 열린 그랑프리 5차 대회에선 우아하고 고혹적인 프리스케이팅 ‘미스 사이공’으로 프리 역대 최고점(133.70점)까지 다시 썼다.

그리고 마침내 2008∼2009시즌이 찾아왔다. 김연아의 기술과 표현력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고혹적인 쇼트 ‘죽음의 무도’와 신비스러운 프리 ‘세헤라자데’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프로그램이었다. 2009년 3월, 김연아는 데뷔 후 3번째 세계선수권에서 총점 207.71점을 얻어 피겨 여자 싱글 사상 최초로 ‘꿈의 200점’을 돌파했다. 새로운 ‘피겨 여왕’의 공식 대관식이었다.

● 완벽한 연기와 경이로운 점수로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

올림픽 시즌이던 2009∼2010시즌은 여왕의 발자취가 정점에 오른 시기다. 김연아는 섹시한 본드걸로 변신한 쇼트 ‘제임스 본드 메들리’와 섬세하고 창의적인 프리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는 자신의 장점을 빠짐없이 담아냈다. 2010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의 연기가 끝나자 쇼트 78.50점, 프리 150.06점, 합계 228.56점이라는 경이로운 숫자가 전광판에 찍혔다. 한국 피겨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건 ‘피겨 여왕’은 수많은 전설들이 거쳐 간 올림픽 역사에도 깊고 진한 발자국을 남겼다.

김연아는 이후에도 최고의 프로그램과 연기로 세계를 경탄시켰다. 2011세계선수권에서 선보인 프리 ‘오마주 투 코리아’는 자신의 나라 대한민국에 보내는 감사의 헌시였다. 2년간 국제대회 출전을 자제하면서 은퇴설에도 휩싸였지만, 2013세계선수권에서 쇼트 ‘뱀파이어와의 키스’와 프리 ‘레미제라블’로 다시 우승하면서 건재를 알렸다. 김연아가 밴쿠버올림픽에서 남긴 점수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점수(218.31점)와 함께였다.

● 금메달보다 더 아름다웠던 은메달, 그리고 마지막

김연아는 일찌감치 소치동계올림픽에서 현역 생활의 마지막 연기를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가장 영광스러웠어야 할 마지막 순간,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 올림픽이 열린 러시아의 홈 텃세다. 김연아는 쇼트 ‘어릿광대를 보내주오’와 프리 ‘아디오스 노니노’를 모두 완벽하게 연기했지만,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신 러시아 선수인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가 석연치 않은 고득점과 함께 금메달을 가져갔다. 김연아를 제외한 모두가 화를 냈다. 여왕의 마지막 연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던 전 세계 피겨 전문가들과 팬들이 러시아와 심판들을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의연했다. “나는 후회 없는 연기를 펼쳤고, 결과에 만족한다. 어차피 금메달은 내 목표가 아니었다”고 했다. 눈물을 흘리는 대신 환하게 웃었다. 최고에 올랐던, 그리고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 앉은 선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자긍심과 포용력이었다. 담담한 방식으로 또 한번 자신의 위대함을 알린 김연아는 이제 한국의 팬들 앞에서 마지막 착지를 준비한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트위터 @goodg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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