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癌 초기에 잡자]<8>뇌하수체 종양

  • 입력 2006년 6월 12일 03시 02분


코멘트
강원 춘천시가 고향인 신모(49·여·서울 마포구 염리동) 씨. 지난달 20일 친구들과 고향에 여행을 갔다가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서 “얼굴이 이상하다. 정상이 아닌 것 같다. 뇌 사진을 찍어봐라”는 말을 들었다.

신 씨는 줄곧 주위 사람들로부터 ‘얼굴이 못 알아보게 달라졌다’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많이 변했나? 궁금했던 신 씨는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를 거쳐 신경외과 김선호 교수를 찾았다. 김 교수는 뇌하수체 종양 환자의 코를 통해 수술현미경과 내시경을 집어넣고 수술하는 전문의로 2003년 동아일보 베스트닥터 뇌 비혈관질환 분야 명의에도 선정된 바 있다.

“처녀 때 사진과 비교해 보니 제가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신 씨)

신 씨는 여태 끼던 반지도 현재 손가락이 커져 못 끼고 있다. 신발도 예전엔 240mm를 신었는데 지금은 250mm가 넘는 치수를 신는다.

“턱이 많이 커져 있네요. 이 때문에 윗니와 아랫니가 맞지 않을 겁니다. 또 눈두덩이 많이 튀어 나왔고 코와 혀도 많이 커졌네요. 혹시 당뇨병이나 고혈압은 없나요?”

족집게다. 신 씨는 10년 전부터 당뇨병을 앓고 있었고 4년 전부터 고혈압도 생겼다. 당뇨병 치료를 위해 현재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지만 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 당뇨병 합병증으로 2년 전부터 오른쪽 눈의 시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다.

김 교수는 신 씨의 얼굴 생김새와 그동안 병력을 듣고 진단을 굳힌 것 같았다.

“뇌에서 각종 호르몬 분비를 지휘하는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아요. 뇌하수체에서 성장호르몬이 나오는데 종양 때문에 성장호르몬이 많이 분비돼 말단비대증이 나타난 거죠.”

성장호르몬은 당 대사에 관여하기 때문에 이 호르몬이 비정상이면 당뇨병이 잘 생긴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인슐린의 문제가 아니므로 성장호르몬을 정상으로 되돌리지 않으면 당뇨병도 치료되지 않는다.

김 교수는 신 씨가 최근 찍은 자기공명영상(MRI) 사진을 자세히 보면서 설명했다. 신 씨의 MRI 사진에서 뇌하수체 종양이 1cm 정도로 보였다. 뇌하수체 종양이 커지면 위쪽에 위치한 시신경을 누르기 때문에 시력이 떨어져 병원을 찾는 경우도 있다.

말단비대증이 생기면 비강 내 점막이 부어오르고 좁아져 쉰 목소리가 나고 잠잘 때 코골이가 심해진다. 말단비대증은 일반인들이 봐도 알 수 있을 정도. 환자들은 얼굴 형태가 서로 닮아 형제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러나 서서히 변해가는 특징 때문에 가족보다는 오랜만에 가는 동창회나 친지를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김 교수는 언급했다.

“지금까지는 집안 일로 생긴 스트레스 때문에 얼굴이 변한 것으로 알고 있었어요. 치료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신 씨)

“당뇨병과 고혈압이 심해지면 심장 근육이 커지게 되면서 심장이 제대로 펌프질을 못하게 되요. 심장에 문제가 생기면 사망할 수도 있죠. 이 때문에 말단비대증 환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평균 수명이 10∼15년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김 교수)

이 병은 수술로 90% 정도가 호르몬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더구나 치료가 되면 살이 빠지면서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돌아온다.

“피부의 땀구멍이 쪼그라들고 두꺼웠던 피부도 얇아지고 손가락도 가늘어지며 발도 작아져요. 이는 수술 뒤에 바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김 교수)

신 씨는 진료 후 뇌하수체 기능 이상 여부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혈당부하검사와 뇌하수체 기능검사를 처방받았다. 또 수술기구가 들어가는 통로인 코 검사를 위해 이비인후과 진료도 예약했다.

김 교수는 “말단비대증 환자를 위한 말단비대증재단(080-787-8090)이 있어 수술 뒤 완치가 되지 못한 환자들에게 약값을 절반 이상 지원해 준다”며 “이곳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전문가 진단

신 씨는 혈액검사 결과 성장호르몬이 기준치에 비해 5배 가까운 과다 분비를 보여 뇌하수체 기능에 문제가 있음이 확인됐다. MRI 촬영에서는 지름 1.2cm의 종양을 볼 수 있었다. 종양이 수술로 완전히 제거되면 얼굴의 변형을 가져온 성장호르몬이 정상으로 되돌아오고 당뇨병도 잘 조절될 것으로 기대된다.

뇌하수체는 우리 두 눈 사이 약 7cm 뒤쪽 뇌중앙부에 숨어 있는 지름 1.5cm 크기의 매우 작은 장기지만 크기에 비해 생존에 필수적인 장기다. 뇌하수체는 우리 몸의 호르몬 분비 장기인 갑상샘과 유방과 난소, 고환, 부신피질 등에서 나오는 10여 가지가 넘는 주요 호르몬의 분비를 조절한다.

뇌하수체 종양은 전체 뇌종양의 약 25%를 차지하며 99%가 양성종양이다. 양성종양은 위암이나 간암 등 우리가 잘 아는 악성종양과 달리 다른 장기로의 전이가 없고 그 성장속도가 느리다. 그러나 뇌하수체 종양으로 인한 합병증은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키고 수명도 단축시킨다.

종양에서 분비되는 이상 호르몬에 따라 뇌하수체 종양은 여러 증상을 보인다. 여성은 무월경과 유즙 분비 및 불임을, 남성은 성욕 감퇴 및 정자 수와 운동성 감소를 가져온다. 말단비대증과 고혈압, 당뇨, 심혈관질환이 동반되기도 한다. 또 얼굴이 달덩이처럼 부어 오르며 살이 트고 작은 상처도 잘 낫지 않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외 큰 종양 때문에 주변 시신경을 압박해 시력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환자는 물론 이를 진료하는 의사조차 우선 눈에 보이는 당뇨나 혈압 조절에만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아 조기 진단에 어려움이 많다. 조기 진단율이 낮아 2∼4cm 전후의 큰 종양을 갖고 병원을 찾는 환자도 많다. 뇌하수체 종양으로 보이는 증상들이 있는 경우 혈액검사와 MRI 촬영을 통해 종양 유무를 진단받는 것이 좋다. 치료는 수술이 최선이다. 단 유즙분비호르몬 분비 뇌하수체 종양의 경우는 약물치료가 우선이다. 수술은 콧구멍을 통해서 수술하는 방법과 두개골을 열고 하는 방법이 있으나 최근에는 대부분 콧구멍을 통해서 수술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종양의 완전 제거가 힘들어 일부만 제거할 경우 그 재발률이 30∼40%로 높고 호르몬의 과다 분비를 정상으로 되돌릴 수 없다.

최근에는 이러한 부분 종양 제거의 단점을 없애기 위해 수술실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수술용 MRI’ 장비를 이용해 수술 전후로 MRI 촬영을 하면서 종양의 완전 제거를 시도하고 있다.

김선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뇌종양클리닉 교수

※ 다음 순서는 소아 혈액암입니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신 분은 e메일(health@donga.com)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