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신종 코로나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오늘과 내일/박용]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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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은 선제 조치, 전문가는 침착하게 대응
축적된 신뢰자본이 위기 극복의 에너지

박용 뉴욕 특파원
박용 뉴욕 특파원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진 환자가 5명으로 늘어난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도심. 마스크를 쓴 시민은 드물었다. 하지만 약국이나 슈퍼에선 마스크가 동이 났다. 5곳을 들렀는데 남아 있는 마스크는 없었다. 한 매장 직원은 묻기도 전에 “마스크는 다 팔렸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거리에선 보이지 않는 그 많은 마스크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신종 코로나가 더 확산될 때를 대비해서 미국인들이 집에 비축해 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주택 및 생활용품 전문점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원래 마스크가 있던 진열대는 텅 비어 있었다. 그 대신 카운터 옆에는 보통 독성이 강한 페인트를 칠할 때 쓰는 ‘N95’ 마스크 수십 개가 따로 진열돼 있었다. 매장 직원과 몇 분 남짓 얘기하는 사이 그나마 남아 있던 마스크도 동이 났다. 직원은 “중국인들이 마스크를 많이 사 간다. 중국에 있는 가족들을 걱정해 그런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물론 7일 현재 확진자가 3만 명을 넘고 600명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은 중국과 확진자가 12명인 미국이 느끼는 위협의 정도는 전혀 다르다. 그렇다고 미국인들이 마냥 안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신종 코로나에 대한 걱정이 많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일상생활에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은 정부와 전문가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고 있다. 시민들은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전해지는 보건 전문가들의 정보와 조언을 대체로 믿고 따르는 분위기다.

먼저 미 당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적극적이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뚜렷한 증상이 없는 환자가 신종 코로나를 감염시킨 독일 사례가 보고된 지난달 31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일 오후 5시부터 최근 14일 이내에 중국에 체류한 외국인의 입국을 전격 금지했다. 이번 조치로 103억 달러(약 12조 원)의 관광 수입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공항에 빗장을 걸었다. 중국 외교부가 “공포를 선동한다”고 비판하자, 미 국무부는 “미국 시민의 안전보다 더 높은 우선순위는 없다”며 반박했다.

시민을 안심시키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사람 대 사람 간 전염 사례가 확인된 지난달 30일 낸시 메서니어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 국립면역호흡기질환센터 소장은 기자회견에서 “바이러스가 일반 커뮤니티까지 확산되지 않고 있다. 증거에 기반해 상황에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시민들을 다독였다. 신종 코로나가 확산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를 제안했다” “특정 기관이 만들어낸 바이러스”라는 가짜뉴스가 나돌았다. 백악관은 국립과학원(NAS), 공학한림원(NAE), 국립의학원(NAM) 등의 과학자와 의료진에 신종 코로나의 과학적 기원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며 대응에 나섰다.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비상 국면에서도 국민 보건 위협 앞에서는 정치권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한목소리를 내는 점도 인상적이다. 5일 미 보건복지부 관리들은 신종 코로나 대응 예산을 더 따내기 위해 의회에 달려가 브리핑을 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새해 국정연설에서 원고를 찢으며 신경전을 벌인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당국이 공포를 확산시키지 않고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며 힘을 실어줬다.

‘미국이 정말 강하다’고 느끼는 건 엄청난 화력의 첨단 무기나 세계 최대 경제력 때문만은 아니다. 전문가와 정부 당국의 선제적 대응을 믿고 위기에 침착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에서 세계 최강국 미국의 저력이 느껴진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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