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도 똑같은 청춘,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냐’…꼰대들의 월드컵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1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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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칼럼

20년 지기 중에 포항의 모 공대 컴퓨터공학 박사 출신의 벤처회사 임원이 있다. 학력, 직장만으로도 남부럽지 않은 1인이다. 십 수 년 째 대기업 다니며 따박따박 월급타서 가정경제에 어마어마한 기여를 하는 ‘공대 출신’ 아내도 있다. 잘 생긴 아들도 있다. 부럽기로 따지면 이제 막 시작이다. 1990년대 하이텔 축구동아리에서 ‘글발’도 좀 올렸고, 축구 국가대표 응원단인 붉은악마 초창기시절 집행진으로 소리도 좀 질렀던 사람이다. 10년 전쯤엔 또 충북 단양의 한적한 맨땅에다 자그마한 집도 한 채 맨손으로 올렸다. 감자, 옥수수, 고추, 상추 등의 양식을 키우며 주말에는 지인들과 삼겹살 파티를 벌인다. 나이 오십에 마라톤도 뛴다. 담배도 핀다. 이 쯤 되면 뭐 자기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사는 사람이다.

나이로만 보면 이미 ‘꼰대 존(Zone)’에 무혈입성한 이 양반은 2006년 독일 월드컵부터 단 한번도 빼먹지 않고 매번 세 식구가 월드컵 직관을 가고 있다. 항공편은 물론, 며칠 씩 배도 타고, 수십 시간 버스, 기차도 타가며 월드컵 개최도시를 돈다. 지난주에는 러시아로 훌쩍 떠나서 카톡방에 이미 ‘이고르’라는 마음씨 좋은 숙소 지배인 아저씨 이야기, 도무지 잠을 못 자게 만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 이야기,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니즈니노브고로드의 닭볶음탕 이야기를 하염없이 풀어놓는다.

오늘도 강의실에서 날 마주보고 앉아있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꼰대들도 이렇게 다양한 경로로 월드컵을 소비한다. 다만, 우리가 월드컵을 보고 마시고 숨쉬는 호흡이 요즘 젊은 세대들과 조금 다를 뿐이다. 김민우의 태클도 보이지만 김민우의 눈물도 이젠 보인다. 웅장한 러시아 월드컵 스타디움의 최신식 시설도 부럽지만 그곳까지 가면서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여정이 더 부럽다. 월드컵 9회 연속 진출.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천하의 마르코 반 바스텐(네덜란드 옛 축구 스타)이 뼛속까지 부러워할 일 일테고, 족보와는 무관한 아프리카와 아시아권의 언더독(Underdog) 팀들을 어느덧 응원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게 바로 월드컵, 한 달 간의 축구축제 아니던가?

우리도 젊을 때는 그랬다. 1970년대, 늦은 밤 이철원 캐스터 아저씨의 중계로만 보던 차범근이 드디어 멕시코 월드컵에 우리 대표팀으로 나간다고 할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었고, 볼리비아 전(1994년 미국 월드컵) 하석주의 노마크 일대일 찬스에서의 ‘똥볼’에 쌍욕을 해댔고, 시뻘건 붉은 물결이 서울 시청광장을 뒤덮었을 때 며칠간 목청이 나갔던 적도 있었다. 우리도 그땐 경기 스코어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게 젊음이라면, 그게 젊은이들의 세대를 초월하는 축구 소비문화라면 말릴 수도 없고 고쳐지지도 않는다. 단, 그땐 인터넷이 아니라 DDD(장거리 직통 전화) 공중전화기도 잘 없었던 때였기에 우리끼리 울부짖던 분노와 탄식과 함성, 그 무엇도 천장 밖으론 도망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상처도 없었다. 누구에게 줄 상처도 받을 상처도. 젊은이들은 그들 방식대로 월드컵에 몰입하면 된다. 하지만, 둘 다 겪어보니 우리 꼰대들의 월드컵이 더 재밌다. 더 소중하다. 덜 아프다. 대학에서 생활하며 만나는 우리 학생들. 아플 일이 너무 많다. 월드컵까지 우리 청춘들을 아프게 해서 될 일인가. 우리 선수들도 똑 같은 청춘. 30대 중반이면 인생 끝날 거라고 더 불안해하는 청춘. 어쩌면 월드컵 끝난 후에도 매일 격려가 필요한 청춘인데. 얼마 전 종영한 어느 ‘아저씨 드라마’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아무 것도 아냐.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월드컵이 끝나면 우린 또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꼰대들은 남은 월드컵을 더 즐겨 볼 생각이다. 누구보다도 이젠 아프기 싫어하는 게 바로 우리 꼰대다.

최준서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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