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사건, 30년만에 쓰는 후속보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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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추적 보도했던 본보 황호택 기자 추가취재 통해 ‘…6월 항쟁’ 출간
부검醫 “동아일보 보도로 사실 드러나 감정서 사실대로 쓰겠다고 결심”
“朴씨 가족이 화장 원해 합의했다”… 사망 당일 경찰 거짓말 새로 밝혀

1987년 1월 24일 고려대 학생들이 고(故) 박종철의 시신 화장 현장을 다룬 동아일보 ‘창(窓)’ 기사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서울 성북구 안암동 교문을 나서고 있다. 동아일보DB
1987년 1월 24일 고려대 학생들이 고(故) 박종철의 시신 화장 현장을 다룬 동아일보 ‘창(窓)’ 기사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서울 성북구 안암동 교문을 나서고 있다. 동아일보DB
“14일 오전 11시 45분경 박 군(고·故 박종철 씨)을 처음 보았을 때는 …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됐으며 물을 많이 먹었다는 말을 조사관들로부터 들었다.”(동아일보 1987년 1월 17일자 보도에서)

서울대생 박종철 씨가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졌음을 입증한 의사 오연상 씨의 증언이다. 6월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려는 언론의 노력을 조명한 책이 나왔다.

1987년 당시 5년차 기자로 동아일보 법조팀장이었던 황호택 동아일보 고문(전 논설주간)은 ‘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 항쟁’(블루엘리펀트)을 최근 출간했다.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는 양심적인 관계자들의 증언과 폭로가 결정적이었지만 언론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저자는 당시 취재기자, 수사 관련자와 제보자들을 다시 만나고 자료를 수집해 그 과정을 치밀하게 재구성했다.

1987년 1월 19일자 1면.
1987년 1월 19일자 1면.
동아일보는 당국의 보도지침을 무시하고 1987년 1월 15일자에 “대학생 경찰조사 받다 사망”이라는 기사를 5단으로 키워 박 씨의 얼굴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이어 16일자에는 부검 결과 ‘폐에서 출혈반이 발견됐다’ ‘피멍이 많이 발견됐다’는 것을 전하며 진상은 ‘고문치사’임을 알렸다. 19일자에는 1면 머리기사부터 6개면에 걸친 보도로 당국의 보도지침을 부쉈다.

언론 보도는 사건 관계자가 용기를 내도록 돕기도 했다. 부검의 황적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박사는 일기에 “(16일자 동아일보를 보고)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고 판단했고, 어떤 일이 있어도 감정서만은 사실대로 기술해야겠다고 결심”이라고 썼다.

동아일보가 그해 5월 22일자에 치안감을 비롯한 상급자들이 고문치사범 축소 조작을 모의했다는 것을 폭로한 보도는 결정타가 됐다. 이날 남시욱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에게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화를 했다. “남 형 축하해. 귀지(貴紙)가 이겼어. 진상을 밝히기로 결정했어.”

책은 당시 언론이 미진했던 부분에 대한 반성도 담겼다. 고문 경찰 2명이 구속된 뒤 기자들은 그 가족들이나 검찰 수뇌부를 통해 범인이 축소됐는지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약 3개월 동안 은폐조작의 진상이 감춰졌다.

저자는 사건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도 일부 밝혀냈다. 경찰은 박 씨가 숨진 날 저녁 최환 서울지검 공안부장을 찾아와 “가족과 합의했다. 오늘 밤에라도 화장을 해서 유골 가루를 달라고 한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당시 박 씨 가족에게는 죽음을 알리지도 않았다. 또 6월 항쟁 당시 민병돈 특전사령관이 “군이 시위를 진압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보안사령관을 통해 전두환 대통령에게 전했다는 사실도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드러났다.

당시 보도는 오늘날 언론에도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던진다. 황열헌 동아일보 기자는 다른 기자들이 ‘기사도 안 나갈 텐데, 뭐 하러 가느냐’고 하는 와중에도 박 씨의 시신을 화장하는 벽제 화장터를 취재해 ‘창(窓)―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비는 할 말이 없다이’(1월 17일자)라는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시위대의 플래카드에도 쓰였다. 남시욱 편집국장은 “만약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박 군 사건은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고 부국장에게 당부했다. 동아일보 편집국 간부와 기자들도 보안사나 남산 국가안전기획부 지하실에서 고문과 구타를 당하던 서슬 퍼런 시절이었다.

저자 황호택 고문은 “사건 30년 만에 쓰는 후속 보도”라며 “민주화를 이룬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을 기록하려는 사명감으로 썼다”고 말했다. 심재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책에 기고를 싣고 “동아일보가 당시 어떻게 한국 언론의 향도(嚮導) 역할을 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저서”라며 “언론인 고문 등 명백한 위협 앞에서 동아일보는 사인(死因)과 은폐조작의 전모를 밝히는 대특종을 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박종철 사건#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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