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유니폼 입고 궂은 일 마다않는 ‘불펜 포수’ 4인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9일 20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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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 포수’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에서 펴내는 ‘한국직업사전’에도 실려 있지 않은 일자리다. 하지만 불펜 포수들이 없다면 프로야구 선수들은 정상 컨디션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국가대표 팀도 마찬가지다.

프로야구 KIA 이인주(26)에게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 12가 불펜 포수로 뛰는 마지막 기회다. 대회 준결승 경기를 앞두고 19일 일본 도쿄돔에서 만난 그는 “선수 생활을 할 때도 못해봤던 대표 마크를 달게 돼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된 것 같다”며 “KIA에서 재계약을 제안했지만 이제 나이도 있고 해서 다른 일을 알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불펜 포수는 보통 한 달에 170~220만 원 정도를 받는다는 게 그의 전언. NC 퓨처스리그(2군)에서 선수로 활약했던 이인주는 “시즌 때는 월요일 빼고 매일 저녁 일하는데도 그 정도”라며 “그래도 이번 대회 때는 고등학교 선배 김광현(27·SK) 형과 차우찬(28·삼성) 형이 아주 잘 해줘서 편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표팀에는 이인주 말고도 SK 김관응(23), LG 김태완(20)이 불펜 포수로 참가하고 있다. 여기에 왼손 배팅 볼 투수 kt 이창석(22)도 등 뒤에 자기 이름이 없는 유니폼을 입고 더그아웃과 그라운드를 누빈다. 이들은 연습 때 공을 던지고 받는 건 물론이고, 연습 전후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진행요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이들이 ‘우리에게 가장 잘해주는 선수’로 꼽은 선수는 오재원(30·두산)이다. 대만에서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고생했는데 오재원이 이들을 불러 삼겹살 파티를 열어줬다. 김관응은 “물론 가볍게 소주도 한잔 기울였다. 아주 가볍게”라며 웃었다. 우규민(30·LG)은 같은 팀 소속 김태완에게 용돈을 주기도 했다.

이창석은 “(두 나라에서 모두 선수 생활을 해 본) 이대은(26·지바 롯데) 형한테 들으니 미국이나 일본은 우리보다 불펜 포수나 배팅 볼 투수에 대한 처우가 훨씬 좋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이들이 오래 팀과 함께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쿄=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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