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실학 모색… 다산의 세계 꿰뚫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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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 이을호 전서’ 27권 펴낸 제자 오종일 이향준 장복동 교수

장복동 이향준 전남대 교수와 오종일 전주대 명예교수(왼쪽부터)가 스승인 현암 이을호 선생을 회고 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장복동 이향준 전남대 교수와 오종일 전주대 명예교수(왼쪽부터)가 스승인 현암 이을호 선생을 회고 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돌아가시기 직전 저를 부르시더니 비석 같은 번거로운 것은 일절 세우지 말라고 하십디다. ‘학자는 오직 책으로만 자신을 알린다’고 하시면서요.”

칠순을 넘긴 노학자의 눈시울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벌써 17년이 흘렀건만 그는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오종일 전주대 명예교수는 “선생님은 말년에도 하루 10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계셨다. 숨을 거두기 석 달 전까지 논문 ‘한국실학 자생론(韓國實學自生論)’을 펴내실 정도였다”고 말했다. 다산학(茶山學)의 거두 현암 이을호 선생(1910∼1998) 얘기다.

현암의 각종 논문과 저서를 모은 27권짜리 ‘현암 이을호 전서’(한국학술정보)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최근 출간됐다. 이 전집 출간에 힘을 보탠 현암의 직계 제자 세 명을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났다. 이들은 스승에 대해 “전 재산을 교육사업에 쾌척할 정도로 순수했던 동시에 학문의 세계에서는 추상같이 엄격한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현암이 전남대 인문대학장으로 재직할 때 교수들의 연구실에 놓여 있던 바둑판을 엎었던 얘기가 대표적이다. 한가하게 바둑이나 둘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책을 보라는 준엄한 질책이었다.

현암은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에 나서 옥고를 치를 당시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를 감옥에서 일독한 뒤 본격적인 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본래 현암은 경성약전을 졸업한 뒤 약국을 차린 약사 출신. 오 교수는 “당시 최승달 선생을 통해 이제마의 사상의학(四象醫學)을 공부한 것도 실학 연구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사상의학이 중의학에서 벗어나 한국인의 체질에 맞는 독자 의학을 추구한 것처럼 현암도 주자성리학 일변도에서 탈피한 주체적인 실학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평생 학문 연구에서 한국적 시각을 중시한 현암의 노력은 고전 번역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논어를 한글로 번역할 때 다산의 주석을 참고하면서 우리 시각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또 딱딱한 번역투가 아닌 깔끔한 한글 번역으로 눈길을 끌었다. 최근 인기를 모은 올재클래식스 시리즈의 ‘한글논어’는 50여 년 전 현암이 집필한 책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명작은 살아남는다는 진리를 새삼 일깨워준다.

무엇보다 현암이 이룬 금자탑은 1967년 쓴 ‘다산경학사상연구’. 다산학 최초 논문으로 방대한 다산의 저작을 명쾌한 논리로 꿰뚫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도 다산학 입문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통한다. 이향준 장복동 전남대 교수는 “이 논문 속에 다산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모두 담겨 있다”며 “선생은 시대를 앞서간 분이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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