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뒷談]‘연애조작’ 직접 의뢰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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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그녀의 마음 얻는 법? 한달 작전에 300만원”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년)에서 엄태웅(병훈 역·가운데)과 박신혜(민영 역·왼쪽), 전아민(재필 역·오른쪽)이 의뢰인의 짝사랑을 이뤄주기 위한 작전을 짜고 있다. 영화는 치밀한 사전 조사를 한 뒤 도청장치와 망원렌즈, 강우기 등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꿈같은 짝사랑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연애조작단의 활약을 다뤘다. 현실에도 연애조작단을 표방하는 업체가 우후죽순 생기고 있지만 대부분 이벤트업체와 다를 바 없었다. 명필름 제공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년)에서 엄태웅(병훈 역·가운데)과 박신혜(민영 역·왼쪽), 전아민(재필 역·오른쪽)이 의뢰인의 짝사랑을 이뤄주기 위한 작전을 짜고 있다. 영화는 치밀한 사전 조사를 한 뒤 도청장치와 망원렌즈, 강우기 등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꿈같은 짝사랑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연애조작단의 활약을 다뤘다. 현실에도 연애조작단을 표방하는 업체가 우후죽순 생기고 있지만 대부분 이벤트업체와 다를 바 없었다. 명필름 제공
“당신의 사랑을 이뤄 드립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2010년 개봉한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이런 슬로건을 내걸고 비밀리에 남녀 사이의 ‘오작교’ 역할을 해주는 업체를 다룬다. 연애조작단은 짝사랑하는 이성과 연인이 되게 해달라는 의뢰인의 외모를 가꿔주고 말투를 교정해준 다음, 이성에게 해야 할 행동과 대사까지 미리 짜 준다. 의뢰인이 좋아하는 이성에게 경쟁자가 생기면 조직원을 비밀리에 투입해 떼어내 준다. 또 강우기로 인공 비까지 내리게 해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도청장비와 망원렌즈 등을 동원한 전문가들의 치밀한 작전 덕분에 의뢰인의 연애 성공률은 100%에 가깝다.

영화 속 연애조작단은 현실에도 있다. 인터넷에 ‘연애조작단’을 검색하면 10여 개의 업체가 나온다. 이들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획기적인 방법으로 성공률 100%에 도전한다”는 등 그럴듯한 구호를 내걸고 짝사랑에 고심하거나 헤어진 연인과의 재회를 갈구하는 남녀를 유혹한다. 업체 홈페이지에는 사랑에 목마른 젊은 남녀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담아 적은 상담 글이 각각 수백∼수천 개 올라와 있다. 과연 현실 속 연애조작단도 영화처럼 사랑 때문에 가슴앓이 하는 이들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동아일보 취재팀이 연애조작단을 샅샅이 파헤쳐봤다.


30분 전화 상담에 5만∼20만 원


“혼자 인터넷에서 연애방법 배우는 것도 지쳤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

기자는 최근 짝사랑에 빠진 20대 남성을 가장해 복수의 연애조작 업체에 상담을 의뢰했다. 홈페이지에 자신의 신상정보와 사연을 적어 올리고 상담비를 입금하면 전화가 걸려오는 방식이다. 기자는 키가 작고 뚱뚱한 데다 직업도 없는 남성으로, 상대 여성은 고위 공직자의 딸로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스물여섯 명문대생 미녀 ‘지영 씨’로 묘사했다.

업체에 상담비 15만 원을 입금하자 여성 상담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홈페이지에 올린 사연을 읽으면서 “둘은 어떻게 만났나” “지영 씨는 당신이 관심 있다는 걸 알고 있나” 등을 물었다. 얘기를 듣고는 성사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사실 선택은 지영 씨 몫이라 100%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다”면서도 “어떻게든 해보자. 일단 자신감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상담사는 한 달 동안 1주일에 두 번 연애 지도를 해주고 작전을 짜주는 300만 원짜리 프로그램을 권했다. 상담과 작전 지시는 대면이 아니라 전화로 이뤄진다고 했다. 상담사는 “무조건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계약이 파기된다”며 사소한 문자메시지 내용까지 불러준 대로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약 기간이 지나면 추가 비용이 들 수 있다고도 했다. 상담 시간은 30분 정도였다.

다른 연애조작 업체는 상담비 5만 원을 내자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을 ‘연애심리 전문가’라고 소개한 여성 상담사는 인터넷에 올려둔 사연조차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듯 사연에 적어놓은 내용을 계속 물었다. 그러더니 연애 교육과 스타일 변신, 연기자 5명이 현장에 투입되는 550만 원짜리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연애 교육은 인터넷에 올려진 동영상으로 진행되고 여성을 유혹하는 화술은 전화로 가르친다고 했다. 가격이 부담스럽다며 난색을 표하자 상담사는 “동영상과 전화로 하는 연애 강의만 하면 350만 원이니 이걸 해보라”고 권했다. 35분의 상담 동안 기억에 남은 건 업체의 고가 프로그램뿐이었다.

연애조작 업체들은 홈페이지에 “1만 건 이상의 사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비교 분석해 최선의 해법을 찾아준다” “심리학과 통계학, 연애가치이론을 적용했다”는 등 거창한 단어를 써가며 전문성을 자랑한다. 군중심리, 동물적 본능, 질투심리, 운명, 눈물샘 등을 자극해야 한다며 나름의 ‘필승 법칙’을 내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추상적이고 실체가 묘연한 말들이 대부분이고 결국은 값비싼 연애강의 소개로 귀결되는 곳이 많았다.


전직 연애조작단원의 고백


한 연애조작 업체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상담비 목록. 업체 홈페이지 캡처
한 연애조작 업체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상담비 목록. 업체 홈페이지 캡처
“영화 같은 연애조작단은 현실에 없어요.”

연애조작업계에서 1년 반 동안 일했던 A 씨(30)는 이렇게 단언했다. 영화에서는 도청장치와 강우기, 망원렌즈 등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지만 현실에서의 연애조작단은 깜짝 이벤트업체 수준이라는 것이다.

A 씨에 따르면 상담을 마친 의뢰인이 수백만 원을 내고 연애 조작에 착수하기로 결정하면 우선 자신감을 키워야 한다며 동영상 연애강의 등을 듣게 하고 옷과 헤어스타일을 바꿔준다. 실전감각을 키워야 한다며 이성과의 모의 소개팅을 주선하기도 한다. ‘타깃(상대 이성)’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페이스북 싸이월드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뒤지고 때론 미행까지 감행해 다른 이성을 만나는지 엿본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의뢰인에게 나름의 컨설팅을 해주지만 친한 친구도 해줄 수 있는 평범한 조언 수준이라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한 달여 동안의 ‘준비’를 마치면 미리 작업해둔 레스토랑이나 공연장 등에서 의뢰인과 타깃을 만나게 하고는 깜짝 촛불이벤트를 하거나 고백 동영상을 상영하는 식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청혼 이벤트 대행업체와 다를 바 없는 방식이지만 ‘연애조작단’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로 포장한 업체가 대부분인 셈이다.

연애조작단은 ‘입금 이후엔 환불이 되지 않는다’ ‘지시대로 행동하고 말하지 않으면 계약이 파기된다’ ‘사실과 다른 정보를 제공하면 고객이 책임져야 한다’는 식으로 까다로운 계약 조건을 내세우는 게 일반적이다. 거액의 작업 비용을 받고도 연애 조작이 실패할 때를 대비해 책임을 피해 가려는 ‘꼼수’로 보인다. 일부 업체는 연애 조작에 실패해 화난 의뢰인이 인터넷에 비판 글을 쓰면 인터넷 마케팅업체를 동원해 지워버리거나 거짓 성공후기를 올리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A 씨는 까다로운 계약 조건을 악용해 일부러 계약을 파기하고 돈만 챙기려고 가짜 상황을 만들려 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2012년 말 직장인 B 씨(24·여)가 “1년 동안 만나다 헤어진 남자친구와 재결합하게 해달라. 전 남자친구도 애인이 없는 걸로 안다”며 300만 원에 의뢰했는데 상황을 보니 재회가 어려워 보였다. 그러자 업체 사장은 “전 남자친구가 다른 여성과 함께 있는 장면을 찍어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B 씨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전 남자친구에게 이미 애인이 있더라. 우리에게 말해준 정보와 사실이 다르다”며 책임을 돌리고 계약을 파기하려 했다는 것이다.

의뢰인의 잘못된 정보 전달은 계약 위반 사항이라 환불이 불가능하다. A 씨가 전 남자친구를 미행해 여성과 함께 있는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현장을 포착하는 데 실패해 ‘조작 시도’는 무산됐다. 이때부터 연애조작단에 환멸을 느낀 그는 지난해 말 수백만 원을 쓰고도 사랑에 실패한 남성 의뢰인으로부터 지속적인 협박을 받자 일을 그만뒀다.


돈으로 사랑을 사려는 이 시대 청춘


픽업 아티스트들이 연애 비법을 다룬 책들. 대부분 영어나 한자 등 어려운 말을 써 ‘있어 보이게’ 하는 게 특징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픽업 아티스트들이 연애 비법을 다룬 책들. 대부분 영어나 한자 등 어려운 말을 써 ‘있어 보이게’ 하는 게 특징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연애조작단이 성행하는 이면에는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있다’는 일부 젊은이의 그릇된 인식이 반영돼 있다. 이는 처음 만난 여성을 현혹해 잠자리까지 이끄는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픽업 아티스트(PA)’의 인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들은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회원을 모집하는데 ‘백마 탄 왕자님’이 되고 싶어 하는 남자들의 문의가 줄을 잇는다. 대부분 여자의 관심을 갈구하지만 외면 받아온 청춘들이다.

픽업 아티스트는 자신만의 이론과 경험을 내세워 회원들을 상대로 수십만∼수백만 원짜리 연애 강의를 한다. 주로 10여 명을 한 방에 모아 파워포인트(PPT)와 영상자료 등을 보여주며 여성의 마음을 사는 법을 알려주는 식인데 가격은 10시간에 45만 원 정도다. 3∼5일 동안 합숙을 하며 연애 기술을 가르친다는 ‘부트캠프(신병훈련소)’ 프로그램도 있다. 비용은 120만∼550만 원이고 픽업 아티스트와 서울 일대의 나이트클럽 등을 함께 돌아다니며 여성을 직접 유혹해본다는 ‘체험 학습’도 포함돼 있다.

‘수년의 노하우를 담은 작업 비밀서’ 등을 내세우며 직접 쓴 책을 최대 22만 원에 팔기도 한다. 보통 1500∼2000권 정도 팔리는데 대부분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인쇄소에 맡겨 제작한다. 전직 픽업 아티스트 C 씨(30)는 자신이 썼다는 10만5000원짜리 책을 보여줬다. 저자 약력에는 ‘선교사의 딸, 수녀가 꿈인 여성, 명문대 여대생 등과 숱한 성관계를 가졌다’ ‘17세부터 성관계를 했고 19∼22세에 200여 명의 여성을 경험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C 씨는 책뿐 아니라 6주 동안 60만 원을 받는 ‘환골탈태 프로그램’으로 목돈을 벌었다고 했다. 의뢰인의 암울했던 과거를 씻어내자는 의미로 첫 만남은 사우나에서 시작한다. 이후 동대문 의류상가에 가서 옷을 골라준 다음 유흥업소 종업원이 자주 다니는 서울 강남의 논현동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화장까지 시켜준다. 부대비용은 모두 의뢰인이 따로 내야 한다. 외모를 가꾼 뒤엔 강남 일대 길거리를 지나는 여자를 붙잡고 전화번호를 받아오는 연습을 시킨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감을 끌어올린 다음 나이트클럽 등에 함께 가 ‘실전 체험’을 하게 한다는 게 C 씨의 설명이다.

C 씨는 반복되는 유흥 생활에 회의를 느껴 2012년 12월에 일을 그만뒀다. 한창 잘나갈 때는 외제차 2대를 끌고 다닐 만큼 수입이 많았다고 자랑했다. C 씨는 “솔직히 픽업 아티스트를 찾는 남자는 여자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아무리 가르친다고 해도 의뢰인이 습득하지 못하면 무의미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조동주 djc@donga.com·변종국·황성호 기자
#연애조작#시라노 연애조작단#짝사랑#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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