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한국은 남녀평등 사회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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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풍(女風)이 거셉니다. 교사 약사는 말할 것도 없고 법조인 군인 외교관 등 금녀(禁女)의 영역은 사라졌습니다. 대학 진학률은 2009년부터 여학생이 남학생을 앞질렀습니다. 가정에서도 경제권 교육권을 쥐고 있는 이는 대부분 아내와 어머니입니다. 이제는 여성들의 지위가 남자보다 높아져 남자들이 역차별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하지만 겉만 그렇지 도처에 ‘유리천장’이 있는 한국의 남녀평등 현실은 후진국 수준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한국의 성 평등 수준은 135개 국 중 108위입니다. 차기정부의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까지 여성이 등장한 한국 사회, 진정한 성 평등이 이뤄지고 있는 걸까요, 아닐까요.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
▼ “여성은 더이상 약자가 아니다” ▼

김지원 자유경제원 법무실장 변호사
김지원 자유경제원 법무실장 변호사
양성 평등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헌법이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가치 중 하나다. 적어도 외관상으로 우리 여성의 권리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는 비단 정치나 국가고시와 같은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가정 내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중산층 여성의 경우 이미 상당수는 자녀 교육권과 경제권을 쥐고 있다. 주부로서, 어머니로서의 권리 역시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종래 ‘약자’인 여성이 당하던 가정폭력 피해를 이제는 남편이 입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인터넷 육아 관련 카페에서는 아들이 아닌 딸을 낳기 위한 비법을 공유하며 딸이 아닌 아들이어서 슬프다는 글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런 상황인데 아직도 여성이 보호받아야 될 대상에 불과한, 사회적 ‘약자’인지 의문이다.

객관적 수치를 보더라도 문해율(文解率·글을 깨친 사람의 비율), 취학률, 남녀 소득 차, 피임·이혼·외출의 자유, 상속의 평등, 소비·지출에 대한 아내의 결정권, 여성에 대한 폭력 수준 등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 여성개발지수(GID)에 있어 우리나라는 2008년을 기준으로 전체 109개국 중 26위이다. 순위는 점차 상승할 것으로 믿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성들 스스로 이렇게 변화된 여성의 지위에 걸맞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여성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여성은 무조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한 비용과 부담을 증가시켜 여성의 일에 한계를 지어 주기 때문에 여성 스스로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남자들도 변해야 하지만 여자들도 변해야 한다. 스스로를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국가적 책무를 외면하여 온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참에 여성가족부는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1년 출범한 여성부는 기본적으로 여성을 보호 대상으로 규정한다. 전 세계 180여 개국에서 여성 정책 전담 기구를 운영하고 있지만 최소한 문명국에서 우리나라처럼 독립된 여성부나 여성 부처 형태를 두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영국의 경우에는 1997년 우리와 비슷한 WU(Women′s Unit)를 만든 후 2001년 WEU(Women′s Equality Unit)로 바꾼 뒤 2008년에는 양성 평등을 의미하는 GEO(Gender Equalities Office)로 바꿨다. 여타 선진국들도 행정 부처가 아닌 위원회 차원에서 여성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현재 여성부에서 시행하는 정책들도 실효성이 없거나 비현실적이다. 11일 예고한 ‘게임물 평가 계획안’을 보면 중독성이나 폭력성과 관계없는 비합리적인 이유로 게임물을 평가하고 있다.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팡’ 게임조차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싸이의 ‘라잇 나우’에 19금 판정을 했다가 ‘강남 스타일’이 뜨자 해제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다. 이처럼 현실성이 없고 설득력과 일관성도 없이 여성의 권익 향상과 무관한 사업을 추진해 온 게 여성부다. 오죽했으면 최근에 여성부 폐지 서명 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는가, 이는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혹자는 최근 터지고 있는 끔찍한 범죄를 들며 여성 전담 부처가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여성 안전과 성차별은 범주가 다른 문제다. 범죄자가 성차별을 하려는 의도에서 범죄를 저지르는가. 여성 안전을 위해 별도 대책이 필요하다면 법무부에서 해야 한다. 굳이 이중으로 예산을 사용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동안 여성부에서 여성 대상 성범죄 증가에 대비해 무슨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존폐가 문제될 때만 성범죄 증가 논리를 끌어다 쓴다.

단언컨대 여성이 약자라는 주장은 이제 설득력이 없다. 또 여성의 지위 향상만 이야기하는 시대도 이미 지났다. 여성만을 위한 특별한 혜택을 바라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마치 데이트 비용을 남성에게만 부담하도록 하는 여성을 떠올리게 한다. 이분법적 논리로 남성과 여성을 대립적 구도로 전제하고, 남성이니까 여성을 배려해야 하고, 여성만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여성인 나로서도 “아니올시다”일 수밖에 없다.

김지원 자유경제원 법무실장 변호사

:: 필자 소개 ::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4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법무법인 동문을 거쳐 변호사 생활을 한 뒤 2012년 8월부터 자유경제원 법무실장을 맡고 있다.
▼ “남녀 평등 아직 멀었다” ▼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센터장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센터장
주변 사람들, 특히 남성들로부터 ‘한국 사회에서 성차별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라는 선언을 들을 때가 있다. 더 나아가 ‘만약 성차별이 문제라면 이제 남성이 받는 차별을 걱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래서 일부 남성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성가족부의 폐지를 요구하고 이에 일부 여성까지 “남성부도 만들라”라고 ‘공평’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여성 문제를 매일 들여다보고 사는 사람으로서 심히 우려되는 현실이다.

성차별은 구조적이고 공적인 문제이지만 사람들은 이를 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경험을 통해 인식하면서 이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차별은 관습과 관행 속에 섞여 짜여져 있어 사람들이 이를 무의식적으로 편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그렇다면 정말 한국 사회에 더는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가. 이는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국제적으로 적용되는 성차별성 측정 지수들을 사용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불행히도 한국은 여성권한척도(Gender Empowerment Measure)와 성별격차지수(Gender Gap Index)에 있어 모두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2009년이 가장 최근 조사인 여성권한척도에서는 109개국 중 61위, 2012년 자료가 있는 성별격차지수에서는 135개국 중 108위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체적 하위 지표의 내용이다. 한국은 남녀의 경제 활동 참여 격차에서 83위, 임금 격차에서 117위, 소득에서 112위, 고위직 비율에서 104위, 여성 국회의원 비율에서 81위다. 한국이 높은 점수를 받는 부분은 평균수명, 문해율, 취학률 등이다. 여기서 보는 것처럼 한국 여성의 경제, 정치 활동의 실적은 지극히 미약하다.

경제, 정치 영역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여성의 인권과 안전에 관련된 상황이다. 이 부분은 순위로 나와 있지 않지만 최근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반인륜적 사건들을 통해 절실히 실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성인 여성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까지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은 그저 일반적 범죄가 아니라 여성의 성을 자신의 욕망 추구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성차별적 의식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여성의 성은 남성을 위해 존재하고, 필요하면 살 수 있고, 사지 못한다면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의 인격과 성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남성 중심적 사고가 이러한 범죄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성폭력이 이러한 극단적 사례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업무 관계나 친분 관계가 여성이 동의하지 않는 성관계로 미끄러져 가는 경우가 너무 많다(영화 건축학개론에서는 여성에게 술을 먹인 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 행사한 성폭력을 여성 정복 사례로 간주하는 일부 남성의 시각을 잘 보여 준다).

단지 이러한 성폭력을 신고해서 법적 처벌 절차를 밟는 과정이 여성에게는 너무 힘들고 또한 유리하지도 않기 때문에 많은 여성이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좁은 의미의 성폭력을 범죄로 인정하고 있지만 성폭력이 폭력을 동반하지 않고도 권력 혹은 친분 관계에 기반한 강요와 회유를 통해서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은 아직 전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이는 여성과 남성의 성적 권리에 대한 차별적 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적은 남자가 아니고 성차별이다. 여성과 남성을 서로 대치시키는 것은 성차별 해소 방안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의식과 관습이 남성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성차별 해소는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가족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남성의 성차별 해소도 여성부의 업무이다. 남성이 가족 부양의 과중한 의무감에 시달리고 이 때문에 일에만 매달리고 자녀양육이라는 보람 있는 부모 역할로부터 스스로 소외되는 것은 남성이 겪는 성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부는 현재도 부자(父子)로 이루어진 한부모 가정, 미혼부, 조손 가정 등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으며 2013년부터 시작되는 제4차 여성정책기본계획에 포함할 남성 성차별 해소를 위한 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센터장

:: 필자 소개 ::

한국외국어대 프랑스어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방송학회 이사, 여성커뮤니케이션연구회 연구이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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