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배낭은 3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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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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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용도 무엇을 할 것인가 ② 용량 얼마나 넣을 것인가 ③착용감 등판길이에 맞는가
■ 배낭 구입할 때 이것만은…

“무게는 등산의 적이다.”

프랑스 3대 산악가 중 한 명인 가스통 레뷔파(1921∼1985)가 한 말이다. 사실 그렇게 대단한 말은 아니다. 동네 뒷산에라도 올랐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초등학생인 옆집 꼬마도 알아들을 만한 얘기다. 짐이 무거우면 평지에서도 힘이 든다. 더군다나 등산은 중력을 거슬러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일이 아닌가. 이 당연한 말이 ‘명언’처럼 회자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이 정도 짐은 거뜬하지’라는 무모한 사람이 많은 탓이고, 둘째는 배낭을 잘못 선택하는 경우도 많아서다.

배낭을 단순히 짐을 담는 자루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제대로 된 배낭은 크기, 디자인, 소재는 물론 작은 끈과 지퍼 하나까지도 철저히 쓰임새를 고려해 설계된다. 좋은 배낭을 멘다는 건 중력에 맞서 싸울 괜찮은 무기 하나를 가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 무엇을 할지부터 정하라

“여기서 제일 잘 나가는 게 뭡니까?”

아웃도어 매장에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직원은 대략 난감해진다. 등산이 처음이라는 50대 남성의 눈길은 이미 60∼70L 급 대형 배낭에 꽂혀 있다. 일부 여성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간다며 등산장비를 ‘풀세트’로 구매하면서 ‘예쁜 배낭’만 찾기 일쑤다. 모두 배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다. 무조건 비싸고 큰 배낭이 좋다는 단순한 생각은 큰 낭패를 부르기 십상이다. 배낭을 고르는 첫째 기준은 그 배낭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배낭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단거리용과 장거리용, 그 중간쯤인 다목적용이다. 단거리용은 주로 당일에 등·하산이 끝나는 경우에 사용한다. 가장 큰 특징은 등과 맞닿는 부분이 통풍이 잘 되는 그물 형태로 돼 있다는 점. 알루미늄 프레임이 형태를 잡아 주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무게는 견디지 못한다. 짐의 무게보다 경량화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반면 1박 2일이나 2박 3일 산행은 기본적으로 몸에 지녀야 할 것이 많다. 보온을 위한 옷과 식량, 랜턴 등도 챙겨야 하고, 침낭까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장거리용은 그래서 등판 프레임이 매우 견고하다. 허리벨트도 두툼하고 지지력이 좋다. 이는 어깨에 집중되는 짐의 무게를 아래쪽으로 분산시키는 구실을 한다. 다목적용은 둘의 장점을 모두 차용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도저도 아닌 경우가 많다.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했다면, 다음에는 배낭에 뭘 얼마나 넣을지를 결정해야 한다. 용량을 결정하기 위해서다. 당일 일정으로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 등을 갈 때는 물과 도시락, 방풍 재킷에 카메라 하나 정도만 넣으면 된다. 15∼20L 용량이면 차고 넘친다. 다만 겨울에는 두툼한 다운재킷을 넣어야 하며, 주말 등산까지 할 것이라면 25∼30L 사이에서 적당한 크기를 선택해야 따로 배낭을 하나 더 사는 중복 지출을 줄일 수 있다.

설악산이나 지리산을 종주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큰 배낭이 필요하다. 시중에 나온 가장 큰 배낭은 85L 급. 40L 급 이상의 중대형 배낭은 대부분 머리 부분이 분리돼 필요에 따라 용량을 늘릴 수 있는 오픈헤드(Open-Head)형이다. 중소형 배낭은 머리 부분도 지퍼로 여는 형태가 많다. 물론 단거리용이라고 무조건 작은 건 아니다. 캐나다 아크테릭스의 ‘액시오스’(50L)는 허리벨트나 등판 프레임을 매우 가볍게 만든 단거리용이다. 매우 날렵하게 디자인한 것은 물론 소재도 매우 가벼운 것을 사용해 빠른 등반에 적합하게 설계됐다.

○ 내 몸에 맞는 것을 골라라

배낭의 용도와 필요한 용량도 정해졌다. 그러면 내 몸에 딱 맞는 배낭을 골라야 할 차례다. 옷도 입어 보고 사야 하는 것처럼 배낭도 메어 봐야 착용감을 알 수 있다.

50L 급 배낭도 등판 길이에 따라 쇼트(short), 레귤러(regular), 톨(tall)이 있다. 같은 배낭이라도 여성용으로 나온 제품은 용량이 약간 작고(48L 급) 어깨끈의 간격도 더 좁으며, 등판 길이 역시 상대적으로 짧다. 그러니 배낭을 사려면 우선 자신의 등판 길이부터 알아야 한다. 가장 빠른 방법은 전문 매장에 가서 등판 길이를 측정해 달라고 하는 것. 등판 길이는 목과 등이 만나는 7번 목 척추뼈(고개를 숙이면 튀어나오는 뼈)에서부터 허리 양쪽의 골반 뼈 윗부분까지의 길이다. 미국 오스프리에서 만든 모형으로 측정한 기자의 등판 길이는 51cm였다. 같은 회사 제품에서는 ‘M’(중)에 해당한다. 실제 이 회사의 ‘캐스트렐’(58L) 제품을 메 보니 딱 맞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타사 제품은 기준이 달라 같은 길이라도 ‘S’(소)나 ‘L’(대)이 될 수 있다.

착용감을 제대로 보려면 허리벨트를 골반뼈에 두른 뒤 어깨끈을 적당히 조이면서 편한 위치를 찾아야 한다. 만약 자신의 등판 길이보다 작은 배낭을 메면 어깨에 하중이 쏠린다. 이 경우 중도에 산행을 포기해야 할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다. 반대로 너무 큰 배낭을 메면 어깨 부분이 밀착되지 않고 떠서 문제가 된다. 배낭이 흔들려 힘이 더 들 수 있다는 얘기다.

제조사들도 고객의 체형에 맞는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등판에 벨크로(찍찍이)를 부착해 길이를 조정할 수 있는 ‘커스텀 핏’(Custom Fit) 모델이 대표적.

OK아웃도어닷컴 동대문지점의 김영근 매니저는 “새 배낭을 사서 고작 한두 번 멨을 뿐인데 불편하니까 중고시장에 내다파는 경우도 꽤 많다”며 “구입할 때 자신의 몸에 최적화된 배낭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 알면 알수록 복잡한 배낭의 세계

아크테릭스의 초경량 배낭인 시어조는 암벽등반용이다. 18L 급 소형 배낭의 무게가 고작 300g. 일반적인 배낭은 잡다한 주머니나 고정 벨트가 많지만 이 제품은 아무것도 없이 밋밋하다. 등판도 그냥 천이고, 허리벨트와 어깨 끈도 얇다. 무게를 최소화하는 게 탄생의 목적이니까. 오스프리의 ‘호넷’(32L)도 제품 무게가 600g에 불과한 초경량 제품이다.

자전거용으로 특화된 배낭도 있다. 이 배낭의 독특한 점은 빨대가 연결된 수낭(물주머니)이 있다는 것이다. 저항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유선형이 많고, 등판도 자전거를 탈 때 몸에 잘 달라붙도록 곡선이다. 바깥쪽에는 헬멧을 고정시키는 고리도 있다. 달리기용 배낭은 아예 통풍과 편한 움직임에 방점을 찍었다. 미국 카멜백의 ‘옥탄’(25L)은 등판에 공기가 잘 통하도록 ‘에어 디렉터’를 넣었고, 어깨 패드도 땀이 잘 흡수되는 소재를 썼다. 장거리용 대형 배낭에 짐이 잘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기술이 집약된다면, 달리기용 배낭은 자유로운 움직임을 극대화하는 게 목표다. 이 밖에 스키와 스키폴을 고정할 수 있는 겨울 스포츠 전용 제품, 대형 배낭(60L) 겉면에 소형 배낭(13L)을 장착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형도 있다. 여성이 직접 디자인한 여성 전용 제품들도 최근 급성장한 여성 아웃도어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등산복과 달리, 등산용 배낭 중 그 자체로 방수가 되는 제품은 거의 없다. 레인커버가 옵션으로 포함된 제품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레인커버를 꼭 준비하는 게 좋다. 배낭의 소재로는 보통 내구성이 높은 폴리 아마이드나 나일론을 쓰는데, 이들 원단은 소위 생활방수조차 되지 않는 게 많다. 방수용 배낭을 만드는 곳은 스웨덴의 클라트뮤젠이 거의 유일하다. 이 회사는 폐페트병이나 폐낚싯줄 등으로 만든 재활용 원사를 쓴다. 비싸기도 하지만 가장 큰 단점은 무게. 여타 제품들보다 훨씬 무거워 선뜻 선택하기가 망설여진다.

배낭은 물건을 넣는 것이 첫째 기능이지만 비상시에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바닥이 매우 차거나 오염돼 있을 때는 배낭을 깔고 눕기도 한다. 바닥이 젖은 상태라면 배낭 위에 쭈그리고 앉아야 번개로 인한 감전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예기치 않은 비바크 상황에서는 몸을 반 정도라도 넣어 보온을 한다. 이쯤 되면 배낭은 물건이 아닌 ‘동반자’라 해도 무방할 터.

무턱대고 신용카드부터 들이밀기 전에 딱 3가지만 따져보자. 배낭을 메고 어디에 갈 것인지, 배낭엔 뭘 넣을 것인지, 그리고 배낭이 내 몸에 잘 맞는지.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을 등을 맞댈 친구가 아니던가. 참, 배낭을 채울 때는 약간 여유 공간을 두는 게 좋다. 코오롱스포츠 마케팅팀의 원종민 부장은 “몸이 힘들어지면 지퍼를 열고, 물병을 꺼내 물을 마시는 것 같은 소소한 행위도 모두 귀찮아진다”며 “너무 작은 배낭에 물건을 빡빡하게 싸는 것보다는 물건을 손쉽게 꺼내고, 넣을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글=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사진=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촬영협조=OK아웃도어닷컴  
#배낭#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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