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지하철에서 주로 뭘 하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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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1위 스마트폰질 뜯어보니… 男은 뉴스읽기 대세, 女는 메신저로 ㅋㅋ
그럼 서서 갈 때 2위는… 뭘하긴 뭘해 그냥 멍하니 있지

#프롤로그

지하철을 탄다. 반복된 일상의 공간인데도 늘 낯선 이곳. 지하철엔 참 많은 사람이 함께하지만, 동시에 철저하게 혼자다. 오늘도 지하철에서 나를 반겨준 이는 없다. 딱히 시선을 둘 곳이 없어 무언가 할 거리를 찾는다. 할 게 없으면 잠이라도 자야 한다. 결국 뒷주머니 스마트폰에 손가락이 닿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습관처럼 창밖을 살핀다. 아직 두 정거장 남았다.

출퇴근 시간이면 2분이 멀다 하고 플랫폼으로 달려드는 지하철. 칸칸마다 많게는 200명 넘게 들어찬다. 지하철이 출발하거나 설 때면 관성의 법칙에 따라 수많은 사람이 일제히 한쪽으로 쏠린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다들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지하철에서 주로 무엇을 하나요?” 조사에는 SK마케팅앤컴퍼니의 ‘틸리언패널’ 3000명(전국의 20∼59세 성인 남녀)이 응했다. 지하철에 관한 설문이기에 지하철이 있는 지역(서울 인천 경기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 살면서 지하철을 월 1회 이상 이용하는 사람에게 물었다. 》
○ 앉으나 서나 절반은 스마트폰질

▶▶▶ 2일 오전 9시경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경의선). 한 발짝 움직임도 허락되지 않던 열차에 조금 숨통이 트였다. 신촌가 대학생들이 우르르 내린 덕분. 조금의 개인 공간이 생기자 사람들이 일제히 뭔가를 꺼내든다. 휴대전화다. 물론 전화를 거는 이는 거의 없다. 손가락으로 휴대전화 터치스크린을 분주히 누르기 시작한다. 언제인가부터 지하철을 점령해버린 익숙한 풍경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토록 압도적일 줄은 몰랐다. ‘서서 가는 경우’ 지하철에서 주로 하는 일을 묻자 응답자의 절반(45.2%)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즐긴다’고 대답했다. 이 비율은 여자(38.4%)보다는 남자(51.9%)가, 지방(37.2%)보다는 수도권(49.2%)이 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멍하니 있는다’(23.1%), ‘사람들을 관찰한다’(15.0%)가 뒤를 이었다. ‘앉아서 가는 경우’ 역시 ‘스마트폰 또는 태블릿PC’(49.8%)가 대세였다. 다만 ‘책 또는 신문을 읽는다’(19.2%)가 2위에 올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멍하니 있는다’(9.3%)를 크게 앞섰다. 주창윤 서울여대 교수(방송영상학)는 “혼자 놀기를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정보기술(IT) 기기는 딱 맞는 놀이기구”이라며 “혼자 놀면서 갖는 일종의 불안감을 네트워크, 즉 SNS나 메신저 등으로 상쇄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 같은 날 오후 7시 종로3가역. 오금행 3호선 열차는 퇴근길 사람들을 부지런히 나르고 있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20대 초반 남성은 휴대전화에 정신이 팔렸다. 분당 200타 정도의 속도로 글자를 입력하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진동이 울리자 곧바로 휴대전화를 바라본다. 근처 40대 아저씨는 TV를 시청하는 게 분명하다. 안테나를 끝까지 올렸다. 건너편에서 멀티태스킹의 귀재가 발견됐다. 무릎에는 태블릿PC를, 손에는 휴대전화를 올려두고 손과 눈을 열심히 놀린다. 퇴근길, 갑자기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긴 걸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즐긴다’고 한 사람들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그걸로 뭘 하느냐고. 보기를 14가지 주고 1∼3순위를 고르도록 했다. 전체 1위는 ‘카톡, 틱톡 등 모바일 메신저’(57.0%)였다. 2위는 ‘뉴스 읽기’(53.7%). 그런데 남녀가 확연히 차이난다. 여성은 IT 기기로 ‘모바일 메신저’(67.5%)를 가장 즐겼지만, 남성은 ‘뉴스 읽기’(62.0%)가 가장 많았다. 남성은 ‘게임을 한다’(34.3%)가 ‘모바일 메신저’(48.2%)에 이어 3위였지만, 여성은 26.4%만 게임을 한다고 응답해 6위였다. 카테고리별(정보 오락 소통 학습 업무)로 나눠보면 남성은 정보에, 여성은 소통에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소통에 관한 남녀의 차이를 ‘도구적 소통관’과 ‘표현적 소통관’으로 설명했다.

“남성에게 소통은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강하지만, 여성은 친밀성을 높이거나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소통을 합니다. 여성이 전화나 메신저를 하는 것을 남성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겠죠. 여성은 커뮤니케이션이 소홀해지면 불안해집니다.”

○ 지하철은 이동수단? 활동공간?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3일 오전 8시 반 서울 동대입구역. 구파발행 3호선 열차의 출근길. 이어폰을 끼고 일본어 단어집을 펴든 남성 회사원, 휴대전화 게임을 즐기는 30대 여성 그리고 옆 사람을 힐끗거리는 40대 남성도 보인다. 신문을 다 보고 돌돌 말아 쥔 노약자석의 할아버지에, 쪽잠을 청하는 직장인들까지. 저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금쪽같은 시간을 보낸다.

지하철에 있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결과는 ‘효율적’이란 답변이 38.5%, ‘보통’과 ‘비효율적’이 각각 36.8%, 24.7%였다. 3명 중 1명꼴로 ‘지하철 생활’에 만족한다는 얘기다. 특히 지하철에서 주로 책 또는 신문을 본다는 사람의 57.1%가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낸다고 자평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는 것 같은지에 대해서는 ‘비효율적’이란 답변이 43.4%로 ‘효율적’(17.2%)보다 훨씬 많았다. 자신은 지하철에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만 다른 사람들을 보면 허투루 쓰는 것 같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시사 및 교양정보를 습득하는 것’(44.7%)이 가장 효율적인 시간 활용법이라고 답했다. ‘어학공부 등 학습’(30.8%)과 ‘명상이나 휴식’(17.7%)도 좋은 방법으로 꼽았다. 사람들은 또 ‘지하철에서 책 또는 신문을 읽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가장 성공했거나 성공할 것으로 여겨진다(79.1%)고 대답했다. 주 교수는 “성공이라는 개념을 묻자 기존의 고정관념이 크게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사람들은 아직도 인쇄매체가 갖는 매력이나 힘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 지하철에서 발견되는 행동의 전염

모방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는 ‘시뮐라시옹 이론’을 제창한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2007)는 “현대인이 소비하는 것은 제품이 아닌 기호”라고 했다. 이는 소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행동의 전염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남편이 하품을 하면 아내도 연이어 하품을 하는 것처럼.

▶▶▶ 4일 오전 9시 반 서울역. 한 차례 출근 러시가 지난 의정부행 1호선 열차는 비교적 한산했다. 그런데 눈에 띄는 한 장면. 바로 앞의 좌석에 앉은 7명 모두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대각선 반대편의 좌석에 앉은 7명은 딱 한 사람만 빼곤 모두 잠을 자고 있거나 멀뚱멀뚱 주변을 쳐다보고 있다. 그렇다고 앉은 사람들의 연령대에 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이런 장면이 연출되는 것일까.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편이냐고. ‘언제나 의식한다’와 ‘자주 의식하는 편’이라는 사람이 각각 7.1%, 30.5%였다. 물론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51.6%)는 응답이 가장 많았지만, 사실상 10명 중 4명꼴로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쓴다고 고백한 것이다. 김문겸 부산대 교수(사회학)는 “행동의 전염성은 지하철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에필로그


지하철에서 내린다. 일종의 통과의례를 거쳐 나는 또다시 지상으로 나왔다. 지하철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함께 있었던 사람들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일 터다. 지하철은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러나 사람이건 냄새건 한 번도 똑같아 본 적이 없다. 일상 속의 낯섦, 지하철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채널A 영상] “말하면 찍히고 흔들면 걸린다” 스마트폰의 진화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지하철#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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