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29>잔치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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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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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긴 국수처럼 장수 기원
잔칫날에 내놓던 특별한 음식

요즘은 잔치국수를 주로 분식집이나 마트에서 사먹지만 본래는 이름 그대로 잔칫날 먹는 음식이었다. 그것도 환갑이나 돌잔치 또는 결혼식처럼 특별한 날 준비했던 음식이다.

잔치국수는 언제부터 먹었으며 경사스러운 날 왜 국수를 먹었을까. 그리고 국수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보통은 잔칫날 하객이 많으니까 만들기 쉽고 먹기도 편한 국수로 손님을 대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근래에 생긴 이유이고 기본적으로 옛날에는 밀가루로 만든 국수가 귀했기 때문이다. 좋은 재료로 잔칫날 축하객을 대접하는 음식으로 마련한 것이다.

잔칫날 국수로 손님을 접대했다는 기록은 6세기 문헌에 처음 보인다. 북제(北齊)의 황제 고양(高洋)이 득남한 것을 기념해 잔치를 열고 손님을 초대했다. 북조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북사(北史)’에는 이 잔치를 탕병연(湯餠宴)이라고 기록했다. ‘국수 잔치’라는 뜻이니 최초의 잔치국수다. 탕병은 본래 국수라는 뜻인데 면발이 길어지기 전이니 국수라기보다 수제비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후 황제나 고관의 생일잔치 때 국수를 먹었다는 기록이 자주 보이는데 ‘신당서(新唐書)’, ‘자치통감’ 등에도 당 현종의 생일에 국수를 먹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황제의 생일에 국수를 준비한 것은 만수무강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국수는 장수를 기원하는 식품이다. 보통은 국수 면발처럼 길고 오래 살라는 뜻에서 국수가 장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들이 국수를 장수를 비는 식품으로 여기게 된 것은 중국 당나라 때부터인데 여기에도 까닭이 있고 유래가 있다.

남송 때의 학자인 주익은 ‘의각료잡기((아,의)覺寮雜記)’라는 책에 ‘당나라 사람들은 생일에 다양한 국수를 먹는데 세상에서는 이를 보고 장수를 소원하는 음식이라서 장수면(長壽麵)이라고 부른다’고 적었다. 이보다 앞선 북송 때 사람 마영경도 ‘나진자(懶眞子)’라는 책에서 당나라 시인 유영경의 시를 인용하면서 “젓가락을 들어 국수를 먹으며 하늘의 기린만큼 오래 살기를 기원하노라”라고 읊었다. 그러니까 당나라 때부터 사람들이 국수를 먹으며 오래 살기를 기원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국수에다 오래 살게 해달라는 소원을 담아서 먹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국수의 면발에 있다. 다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국수 면발이 길기 때문에 국수 가락처럼 오래 살게 해달라는 미신적인 소망이 아니라 과학적인 이유 때문이다.

국수의 면발이 길어진 것은 당나라 무렵이다. 실크로드가 번창하면서 서역으로부터 수차(水車)를 이용한 제분기술이 도입된다. 밀을 곱게 빻을 수 있게 되면서 밀가루 반죽으로 기다란 국수를 뽑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평소 수수나 기장처럼 거친 음식만 먹고 살았던 사람들이 고운 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먹으면서 좋은 음식을 먹으니 오래 살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생일에 국수를 먹는데 우리는 왜 잔칫날 국수를 먹었을까. 하나는 미역국이라는 우리나라 고유의 생일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밀가루가 귀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때만 해도 밀가루는 진짜 가루(진말·眞末)라고 부를 만큼 귀한 식품 재료였다. 때문에 회갑이나 돌잔치 같은 특별한 잔칫날에 밀가루 국수를 먹으며 장수의 소망을 빌었던 것이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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