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詩歷50년 맞은 고은 시인에게 듣는다

  • 입력 2008년 1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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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100년, 시력 50년. 2008년은 고은 시인에게 ‘운명적인’ 해다. 새해부터 본보에 에세이 ‘고은의 지평선’을 연재하는 그는 “50년 모국어를 갖고 시를 쓰게 허용한 이 땅에 한없이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현대시 100년, 시력 50년. 2008년은 고은 시인에게 ‘운명적인’ 해다. 새해부터 본보에 에세이 ‘고은의 지평선’을 연재하는 그는 “50년 모국어를 갖고 시를 쓰게 허용한 이 땅에 한없이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고은(75) 시인에게 2008년은 뜻 깊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천거로 ‘현대시’에 ‘폐결핵’을,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봄밤의 말씀’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게 1958년. 올해로 등단 50년이다. 올해는 우리 현대시가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 의미 있는 새해 첫날에 그는 본보에 사유로 가득 찬 에세이 ‘고은의 지평선’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9일 만난 시인에게 시력(詩歷) 50년을 맞는 소감을 묻자 “현대시 100년과 겹치기도 해서인지 2008년은 문학적 운명 의식을 절감하는 해”라고 말했다.

그의 기억은 현대시 100년을 아우른다. 현대시의 효시 육당 최남선을 만나 ‘오래된 바위처럼 움직임이 없으면서도 말솜씨가 근사했던’ 인상을 받았고 춘원 이광수의 부인이 눈을 빛내며 들려주는 남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기도 했다.

중학생 때 길에서 한하운의 시집을 주워 읽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런데 그는 그전에 자신을 뒤흔든 시인이 있었다고 했다.

“중학교 들어가서 배운 첫 시가 이육사의 ‘광야’였어요. 거기엔 말입니다, ‘광야’라는 공간이 있고, ‘천고’라는 시간이 있고, ‘초인’, 그것도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습니다. 시 한 편에 그야말로 위대한 시간과 공간, 인간이 있는 것이죠. 충격을 받았어요. 그렇지만 시는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화가가 되고 싶었지요. 6·25전쟁이 나지 않았으면 ‘약간 수준 낮은’ 화가가 됐을지도 모릅니다(웃음).”

그는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그림 솜씨를, 본보에 연재하는 ‘고은의 지평선’에 처음으로 선보이고 있다.

그의 시력(詩歷)은 상처 많은 한국 현대사와 겹쳐진다. 초기의 탐미적이고 허무적인 시세계는 문학과 예술 자체에 대한 탐닉이라기보다 전쟁으로 순정이 찢긴 시골 청년이 갈 수 밖에 없던 길이었다.

그때 가장 기억난다는, 1962년 제주도행 배 위의 하룻밤.

“처음엔 배에서 뛰어내려 죽어 버리려고 했어요. 술을 잔뜩 먹고 취한 김에 감행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먹어도 취하질 않아서….”

결국 제주도에 닿아 살게 됐다. 3년 뒤 서울로 와서도 매일 술을 마시고 길바닥에서 잠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전태일의 분신(1970년) 소식이 실린 신문을 보고선 충격을 받았다.

“젊었을 때 몇 번 자살을 시도했는데 내가 죽으려던 것과 이 사내의 죽음을 나란히 놓아보고…, 그러다 보니 환경, 상황, 시대, 민족, 사회가 나오게 되더군요.”

1970, 80년대 저항의 시기, 그의 도드라진 기억이다. 이후 그는 현실에 대해 치열하게 발언하기 시작했다. 자유실천모임협의회 결성, 1987년 6월 항쟁 중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대표, 민족문학작가회의(현재 한국작가회의) 창립…. 이 시기 그는 네 번의 감옥 생활과 잦은 구금, 연금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았다. “당시 받았던 탄압과 감옥, 그리고 온갖 불이익은 차라리 축제였다”고 기억하는 때다.

시인은 1990년대 이후 동양적이고 불교적인 선시(禪詩)의 세계로 접어든다.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시세계이기도 하다. 이 변화에 대해 그는 “모순의 끝에 존재하는 조화에 대한 깨달음의 결과”이라며 “‘동지들끼리의 무도회’가 아니라 낯선 것들과 만남으로써 큰 조화를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2006년 말 시집을 냈을 때도 “갈등을 품을 수 있는 중도가 모자란다. 좌우는 얘기하는데 중도가 설 자리가 없다”면서 ‘조화’와 ‘중도’를 강조하기도 했다.

본보 연재물 ‘고은의 지평선’에 대해서도 설명을 더했다.

“많은 사람이 ‘스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머무는’ 문화를 보여 주고 싶습니다. 사유만으로 살 수 없는 시대임이 분명하지만 사유가 우리 영혼을 견디게 해 주는 힘이란 걸 알려 주고 싶은 마음에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겁니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지 수년. 시인은 외신에 이름이 나오고 국내에서 관심을 주면 어깨에 가당찮은 짐을 진 것 같다고 한다.

이 세계적인 시인은 올해도 분주하다. 2월에 스페인의 말라가 시청 광장에 세워질 자신의 시비를 보러 가고 3월 중 ‘만인보’ 완간을 계획하고 있으며 4월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국제시인대회에 참가한다. 6월에는 그리핀공로상을 수상하기 위해 캐나다를 방문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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