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에 문제있다” 청소년 52% 응답… 실제 상담은 18%뿐

  • 입력 2007년 6월 1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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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최근 1년간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건강 문제를 겪었지만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은 사람은 10명에 2명꼴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학부모나 교사는 정신질환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어 대처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본보가 지난달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함께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전국 중고교생과 대학생 900명, 중고교생이나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700명, 중고교 교사 3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대한 실태 및 태도 조사에서 밝혀졌다.》

동아일보-대한신경정신의학회 중고교생-대학생 900명 실태조사



인식 차이

○ 청소년과 보호자들의 인식 차이 커

설문 조사에 응한 학생 가운데 52%가 “최근 1년 동안 정신건강 서비스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대답했다. 이는 학부모가 “자녀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35%)이나 교사가 “학생들이 행동문제, 정서장애, 학습장애 등 정신건강장애를 앓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10%)보다 훨씬 높다. 학부모나 교사가 생각하는 것보다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상 문제가 심각한 편이다.

2005년 서울시내 초중고교생 2600여 명과 부모를 대상으로 청소년정신건강 역학조사를 한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조수철 교수는 “당시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7%였지만 부모의 응답 비율은 0.8%에 불과했다”며 “우울증처럼 내적으로 고통 받는 정신건강은 부모가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우울증이 있다”고 대답한 학생의 절반(46.9%)가량이 친구들과 상의했으며, 혼자서 삭이는 비율(29.6%)도 높았다. 병원 등 전문상담기관을 이용한 학생은 5.8%에 불과했다.

자녀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응답한 학부모의 절반(50%)이 배우자, 가족, 친지와 의논했으며 18%만이 전문상담 기관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기관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복수응답)에 대해 어디로 가서 도움을 청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74%),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72%), 가족이 반대하고(70%), 아이가 상처 받을까 두렵기 때문(70%)이라고 대답했다.

교사들은 학생에게 문제가 있다고 느꼈을 때 가장 먼저 학부모와 면담하거나(68%) 상담교사와 상의했다(44%·이상 복수응답). 설문에 응한 교사들은 “상담한 학부모의 78%가 자녀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겼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학부모의 90%가 정신과에 대한 편견을 보였다”고 응답했다.

조기 치료

○ 심각해지기 전에 빨리 치료받아야

청소년은 정신질환에 취약하다. 가정폭력, 친구의 자살, 부모의 알코올 의존, 학교 폭력, 자연재해, 교통사고 등을 당했을 때 성인보다 심한 충격을 받으며 회복 기간이 길다. 하지만 치료 반응은 성인에 비해 빠르다.

실제 수업시간에 벌떡 일어나 돌아다니고 산만하게 행동하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는 청소년은 초등학교 저학년일수록 치료 효과가 빠르다. 아주대병원 정신과 신윤미 교수는 “성인이 우울증을 앓고 있으면 약물치료를 받지만 소아나 청소년은 스트레스가 되는 환경만 바꾸고 상담만 해도 좋아지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김붕년 교수는 “청소년기 우울증은 성인 우울증과 달리 주로 짜증, 반항, 폭언, 공격성, 가출 등으로 표출된다”며 “자녀나 학생을 돌보는 보호자가 이를 모르면 ‘애가 성격이 변했다’거나 ‘갑자기 문제아가 됐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기 쉽다”고 말했다.

상담 실태

○ 사회적 안전망 미흡

청소년들이 정신건강에 대해 전문적 도움을 받기는 쉽지 않다. 비용이 비싼 데다 자녀를 정신과에 데려가는 부모가 많지 않다. 교사도 성적을 우선시하는 학교 분위기 때문에 학생들의 정서문제는 뒷전인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청소년 정신질환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카운티마다 한 곳씩 청소년 정신질환 상담을 위한 정신보건센터를 두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전국 시군구 234곳 중 절반 남짓인 135곳에만 정신보건센터가 설치돼있으며 이 중에서 청소년 정신건강 상담을 하는 센터는 수십 곳에 불과하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강대엽 홍보이사는 “중고교에 상주하는 상담교사에게 정신상담 관련 교육을 시키고 정신보건센터 중에서 청소년 정신건강을 다루는 곳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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