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세 ‘마라톤 환갑’ 영웅이 돌아왔다

  • 입력 2007년 3월 18일 19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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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가 2007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 남자부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동아일보]
이봉주가 2007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 남자부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동아일보]

*이봉주 결승선 통과장면

"봉달이, 화이팅!"

레이스 후반 100m나 처졌던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37·삼성전자). 그가 40.62km 지점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케냐의 폴 키프로프 키루이를 따라잡자 시민들의 함성과 갈채가 쏟아졌다.

18일 서울 세종로를 출발해 숭례문을 돈 뒤 청계천, 서울숲을 지나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으로 골인하는 2007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동아일보사 서울시 대한육상경기연맹 공동 주최) 42.195km 풀코스 레이스.

시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거리로 몰려나와 2004년 대회 이후 3년 만에 출전한 이봉주가 키루이 등 세계적인 건각들을 꺾고 우승하기를 기원했다. 이봉주가 처질 때는 안타까움에, 앞설 때는 조마조마한 마음에 손에 진땀을 쥐며 성원했다.

이봉주는 레이스 막판 기적같은 역전극을 펼치며 2시간8분04초 만에 결승 테이프를 끊어 키루이(2시간8분29초)를 제치고 우승했다. 한국 선수가 세운 국내 대회 역대 최고 기록이자 올 시즌 세계 최고 기록. 국제대회 우승은 2001년 보스턴마라톤 이후 6년 만이고, 동아마라톤 우승은 1995년 이후 12년 만이다. 월계관을 쓴 것은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 금메달 이후 5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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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는 또 만 36년 5개월 7일로 한국 선수 최고령 우승 기록도 수립했다. 세계적으로는 1984년 LA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카르로스 로페스(포르투갈)가 1985년 로테르담마라톤에서 38년2개월2일의 나이에 당시 세계기록(2시간7분12초)으로 우승한 것에 이어 두 번째 최고령 기록이다.

마라톤 선수로는 '환갑'의 나이에 접어든 이봉주는 주위에서 "이미 한 물 갔다"는 비아냥을 들을 때도 "나만 제대로 하면 된다"며 묵묵히 땀을 흘렸다. 그리고 보란 듯이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세운 한국 최고기록(2시간7분20초)에 이은 자신의 통산 세 번째 기록을 이날 수립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결승선을 통과한 이봉주는 첫째 아들 우석(4) 군을 끌어안고 감격의 뽀뽀를 퍼부었다. 이어 둘째 승진(3) 군과 부인 김미순(37) 씨, 어머니 공옥희(70) 씨와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아빠 뛰는 것 봤니?"(이봉주), "응 아빠, 아프리카 선수들보다 훨씬 잘 뛰던데."(우석)

이봉주는 둘째 승진 군과 서로 뺨을 비비며 "아빠 뽀뽀"를 주문했고 승진 군은 자랑스러운 아빠 얼굴을 고사리 손으로 감싸 안은 채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이봉주에게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 2001년 보스턴마라톤 우승 때보다도 현장에서 온가족의 축하를 받은 이날 우승이 더 기쁜 날이 아니었을까.

"다리가 후들거려서 도저히 못 보겠다"던 어머니 공 씨는 "아이고 내 새끼 진짜 수고했다"며 이봉주의 어깨를 두드렸다. 부인 김 씨는 "원래 봉주 씨 달리는 것을 안 봤는데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이고 아빠 달리는 것을 아이들이 보게 하고 싶어 나왔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애들이 제가 달리는 것을 좋아해요. 집에서 가벼운 운동을 하면 따라서 해요. 너무 예뻐 죽겠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이봉주는 이날로 풀코스만 35번 완주했다. 그동안 2번만 중도에 레이스를 포기했다. 완주 거리만도 1476.825km. 세계 마라톤사에 찾아보기 힘든 진기록이다.

이봉주는 "아직 멀었어요. 뛸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달릴 것이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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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 출신인 이봉주는 광천고 1학년 때 육상 장거리에 입문한 뒤 단 하루도 달리기를 멈춘 적이 없다. 풀코스를 뛴 다음날에도 1시간 이상 달릴 정도로 몸 관리에 철저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마에 맺힌 땀이 눈에 들어와 레이스에 방해가 되자 쌍꺼풀 수술까지 했고 2004년엔 국제무대에서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머리를 심기도 했다.

이봉주는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3kg이나 감량했다. 평소 58kg이던 체중이 55kg로 줄였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제주도와 경남 고성, 일본 등을 오가며 3개월간 강도 높은 훈련을 한 결과다. 목표를 향해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며 끊임없이 질주한 결과가 이날 감동의 레이스를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키루이가 먼저 치고 나갈 때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준비가 돼 있었고 키루이도 지쳤다는 것을 눈치 챘거든요. 제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힘썼고 결국 제 판단이 맞았어요."

동갑내기 라이벌인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보다는 늦게 꽃을 피웠지만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이상 한국 남자 마라톤 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 온 이봉주.

온 국민이 "봉달이 파이팅!"을 외치며 그에게 변함없는 갈채를 보내는 이유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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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통제 협조해주신 시민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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