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전쟁사]〈21〉대형과 포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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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릉전투에서 패배한 유비는 오나라 군의 추격에 시달리며 후퇴한다. 유비를 살려준 것이 제갈량의 진법 팔진도였다. 추격하던 육손은 어복포라는 곳에 이상한 살기가 올라온다는 보고를 받는다. 직접 그곳에 들어간 육손은 제갈량이 돌탑을 쌓아 만든 팔진도에 갇힌다. 길을 잃고 죽을 뻔한 육손은 제갈량 장인의 호의로 살아 나온다. 이 이야기는 ‘삼국지연의’에 실린 것으로 당연히 허구다. 그러나 지금도 진법이라고 하면 신비스러운 마법을 부리거나, 적의 대군을 꼼짝 못하게 하는 전술비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

진법은 대형과 포진이다. 전투는 조직력의 대결이다. 조직되고 대형을 이루지 못한 군대는 군대가 아니다. 병사들의 집합을 전투부대로 바꾸는 매뉴얼이 진법이다. 삼국시대 말기에 당나라 이정의 육화진법이 들어왔다. 고려 말 익재 이제현이 우리 진법을 만들었다. 조선 정도전이 새로 진법을 만들었고, 이 진법으로 요동정벌을 준비하다가 피살됐다. 정도전은 진법에서 독창적인 전술을 제시했다. 전위가 방어대형으로 고수하는 동안 후위에 있던 기병이 양익으로 출동해 공격하는 전술이다. 새로움은 낯섦을 의미하고 낯설면 반대가 빗발치기 마련이다. 왕자의난으로 정도전이 실각하자 태종은 하륜을 시켜 그가 만든 법과 제도를 대거 수술했다.

세종이 즉위하자 바로 정도전과 하륜의 개혁안에 대한 검토와 절충을 시도했다. 진법은 변계량에게 맡겼다. 변계량은 하륜과 가까웠지만, 1421년에 편찬한 진도법에서 정도전의 전위수비, 후위공격을 부활시켰다. 논란과 비판이 발생하자 비판과 자신의 반론을 정리한 진설문답이란 글을 썼다. 태종은 정도전을 죽이고 즉위했고, 정도전의 반역 음모가 쿠데타의 명분이었다. 그럼에도 변계량은 정도전의 전술을 여론과 싸워가며 관철시켰다. 화합의 정치란 양 진영의 주장을 절충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이론이라도 국가의 발전과 미래의 대의에 옳은 것이라면 수용하는 것이다. 세종은 이 진법으로 군을 조련해서 4군6진을 개척했다.
 
임용한 역사학자
#유비#오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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