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이 부른다]스포츠-예술로 올림픽 구현… 평창서 부활하는 쿠베르탱의 정신 外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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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겨울올림픽은 ‘문화올림픽’

‘오, 스포츠여. 신들의 기쁨. 생명의 영약이여!’

혹시 이 시를 본적이 있을까? ‘스포츠를 위한 송가(頌歌)’라는 제목의 시로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의 ‘문학 종목’ 금메달 수상작이다. 이 시의 주인공은 게오르게스 호르트로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의 가명이다.

실제로 1912년부터 1948년 런던 올림픽 때까지 예술 종목이 스포츠 종목과 함께 선수들의 열띤 경쟁이 펼쳐졌다. 예술 종목으로는 건축, 문학, 음악, 회화, 조각 등 5개 세부 종목이 있었다. 스포츠 종목과 마찬가지로 금, 은, 동메달이 존재했다.

헝가리의 수영선수인 알프레드 허요시는 1896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남자 수영 100m, 1200m 자유형 종목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 뒤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는 건축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쉽게도 예술 종목은 1954년 퇴출되면서 더 이상 올림픽에서 볼 수 없게 됐다.

올림픽은 초창기부터 문화 예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스포츠와 예술을 통해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려 했던 쿠베르탱의 정신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재현될 것으로 전망된다.

평창 겨울올림픽은 본격적으로 문화올림픽을 표방하고 있다. 문화올림픽이란 올림픽 기간 전부터 종료 때까지 올림픽 행사의 일부로 진행되는 문화 프로그램이다. 올림픽 가치를 통해 개최국 및 전 세계 사람들이 참여하는 문화, 축제, 교육 활동을 통칭한다.

최근 역대 올림픽 대회들도 문화올림픽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는 디지털 중심의 올림피아드, 2012년 런던 올림픽은 역대 최대의 문화예술축제,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은 테마별 러시아문화 소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은 문화적 다양성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평창문화올림픽은 ‘평창, 문화를 더하다’라는 슬로건 아래 국내외 일반인의 참여를 이끌어 낼 계획이다. 또 각국 문화교류를 활성화하는 150여 개의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한 국내외 관심을 확산시키고 한국과 강원도에 대한 문화국가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평창문화올림픽 프로그램은 올림픽 개막을 180여 일 앞둔 가운데 클래식, 재즈, 전시, 오페라, 발레, 사진, 시, 대중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전국 곳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등 국내 대표 연주자는 물론 일본, 중국, 미국 등 각 나라를 대표하는 유명 연주자들이 참여한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지난달부터 약 20일간 강원 일대에서 성공적으로 열렸다. 6월에는 케이팝으로 대표되는 국내 가수, 그룹들이 총출동해 평창 겨울올림픽 성공 기원을 위한 ‘2017 드림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앞으로 펼쳐질 공연, 전시 등 문화행사는 화려하다. 8월 26, 27일 서울 올림픽공원 내 88잔디마당에서는 국립오페라단의 야외 오페라 ‘동백꽃 아가씨’가 공연된다. 제작비 25억 원이 투입되는 ‘동백꽃 아가씨’는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한국적 색채를 가미한 작품이다. 18세기 프랑스 귀족 사회를 조선 영·정조 시대의 양반 사회로 바꿨다. 서울패션위크 정구호 총감독이 연출을 맡은 가운데 국내 최고 오페라 가수들이 출연한다. 이 공연은 2018년 1월 강원 강릉 올림픽파크 내 올림픽아트센터에서 다시 한 번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9월 23, 24일 서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등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공간인 5개 궁궐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들이 출연하는 ‘5대궁 심쿵심쿵 궁궐콘서트’도 열린다. 5개 궁에 설치된 10개의 무대에서 클래식, 국악, 퓨전국악, 재즈, 모던팝 등 총 70여 회의 공연이 펼쳐진다.

한국, 중국, 일본 대표 시인 100명과 국내 참여시인 100여 명이 참가하는 ‘한중일 시인 축제’도 9월 14∼17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와 평창 일대에서 열린다. 한중일의 화합과 우정을 주제로 초청시인, 올림픽 선수들의 시낭송 등의 행사가 열린다.

국내 최장, 최대의 거리 퍼레이드 축제인 ‘2017 원주 다이내믹 댄싱 카니발’은 9월 20∼24일 강원 원주의 따뚜공연장을 비롯해 원주 일대에서 개최된다. 국내외 152개 팀, 1만2000여명이 참여한다.

올림픽을 주제로 청년 예술가들의 미디어 작품을 상영하는 ‘청년작가 미디어 아트전’은 8월부터 내년 3월까지 서울역 서울스퀘어 미디어파사드에서 열린다. 한국의 스포츠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근현대 한국 스포츠 역사전’은 12월 5일부터 내년 3월 4일까지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과거 국민들을 웃고 울게 했던 스포츠 역사의 여러 장면들을 살펴볼 수 있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펼쳐지는 문화올림픽 프로그램도 있다. 겨울스포츠 강국인 체코, 핀란드 등의 현지 예술단체와 한국 예술가의 협연이 펼쳐지는 ‘코리안 사운즈’가 핀란드 헬싱키 사보이 극장(9월 28일)과 체코 프라하 수크홀(10월 3일)에서 열린다. 추운 겨울이 없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콜롬비아, 말라위 등에서 청소년들이 예술 활동을 통해 겨울올림픽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인 ‘아트 드림캠프’도 개최된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평창문화올림픽 추천 프로그램 자료: 문화체육관광부



■‘강원도다운 것’으로 내국인-외국인 모두 만족시킬터

-인터뷰 김태욱 문화올림픽 총연출감독
“강원도로부터 오는 영감이 제가 생각하는 큰 주제지요. 스포츠 선수들, 취재 기자들, 일반 방문객들 모두 새로운 활력을 얻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김태욱 문화올림픽 총연출감독(43)에게 강원도란 “방문할 때마다 새 힘을 얻어 가는 곳”이다. 그는 “머리가 아플 때 오면 치유해주고, 아이디어가 없을 때 오면 힌트를 준다”며 강원도 열성 팬임을 자처했다.

“100여 개의 행사 중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건 강원도의 사계절을 종합적으로 담은 한 시간짜리 상설 테마 공연입니다. 올림픽을 찾아온 모든 사람이 최소한 이거 하나만은 보고 가도록 매일 무대에 올릴 생각이에요. 이 외에도 강원도가 남북으로 분단된 지역임을 고려해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공연을 준비 중입니다.”

올여름부터 겨울까지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문화올림픽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이지만, 내년 2월 겨울올림픽의 시작과 동시에 강원도에서 펼쳐지는 공연, 음악, 전시 등 예술 행사는 시군이 맡는다. 그가 진두지휘하는 공연과 예술 행사 전반에도 강원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녹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에겐 한겨울 매서운 강원도의 칼바람조차도 극복해야 할 장벽이 아닌 ‘강원도의 일부’였다.

“몇 개의 실내 공연장을 새로 만들 예정이긴 하지만, 자연을 완전히 이기려 들면 끝이 없을 겁니다. 그보다는 추위 자체도 콘텐츠로 활용해 ‘강원도의 겨울이 참 좋더라. 봄, 여름, 가을에도 다시 가고 싶다’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강원도다운 것’이 외국인과 내국인의 취향을 다 만족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껏 올림픽 예술 축제는 개최도시의 문화적 성취를 보여주는 기회인 동시에, 도시 재생을 이끌어내는 수단이 돼왔다. 김 감독은 “문화 자산이 충분히 축적된 해외 도시들에 비해 강원도의 문화 인프라 상황은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유산이 행사 후에도 강원도에 남아 도시 발전에 밑거름이 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숲 속에서 펼쳐지는 체험형 미디어 아트를 계획 중인데, 사후에 이 작업을 태백 탄광촌 등 다른 지역으로도 옮겨 설치하면 강원도의 자산이 될 겁니다. 이 외에 다른 공연도 마찬가지로 보완 및 발전시켜 관광 상품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한 김 감독은 2015년 광주 여름 유니버시아드, 경북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2013년 카잔 여름 유니버시아드 등 굵직한 국제 행사에서 개·폐회식 총연출을 맡아왔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도 처음엔 개·폐회식만 연출할 계획이었지만 5월 1일부터 문화예술행사 전반을 책임지게 됐다.

“지난 2년 동안 지자체에서 기획하고 준비해 온 예술 프로그램들을 제가 감히 손보는 상황이 돼 버렸어요. 지역 예술인들을 다 포용하면서 이곳만의 색깔을 내는 게 제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개막식을 6개월 남짓 앞둔 지금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제가 생각하는 강원도는 ‘이야, 멋지다’가 아니라 ‘소박해서 좋다. 편안해서 다시 오고 싶다’라고 말하게 되는 장소입니다. 강원도의 매력을 잘 알리는 게 현재 저의 꿈이고 바람입니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동계올림픽#평창올림픽#평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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