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실험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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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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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만 年500만마리 희생… 컴퓨터 시뮬레이션-줄기세포 배양 ‘대체시험법’ 급부상

《 ‘오늘도 어김없이 주삿바늘이 내 몸을 파고든다. 벌써 24일째. 그저께는 친구 하나가 내 곁을 떠났다. 언제쯤 이 시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두운 동물실험실 한쪽 구석, 지친 생쥐의 눈빛에는 슬픈 독백이 담겨 있다. 수많은 실험동물의 한탄은 인간의 안전과 과학 연구를 위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
새로운 의약 물질이나 화학 물질을 제품화하려면 독성시험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각 후보 물질의 독성을 시험하기 위해 희생되는 실험동물의 수는 엄청나다. 급성독성시험에 실험용 쥐 100마리, 28일간 반복 투여하는 시험에 또 수백 마리가 쓰인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희생되는 실험동물은 쥐, 토끼, 원숭이 등을 포함해 150만 마리 정도. 보고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500만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동물실험을 통해 의약 또는 화학 물질을 투입한 동물이 죽는지 아니면 살아남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간, 피부와 같은 기관에 이상 반응이 생기는지 등의 외형 변화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물질이 유전적 변화를 일으키는지, 장기적으로 병으로 진행될지 등을 알기 위해서는 실험동물의 주요 질환과 관련된 유전자를 일일이 검사해야 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 동물학대를 피할 수 있을까

최근 동물실험을 대체할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줄기세포를 이용한 독성평가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동물학대라는 비난도 피할 수 있다.

부산대 약대 김형식 교수는 식품의약품안전청과 함께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독성물질을 파악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신장에 해를 끼치는 염화수은, 염화카드뮴 등 독성물질의 화학 구조와 결합 부위 그리고 독성 반응을 컴퓨터에 자료화한 뒤 새로운 물질이 나오면 독성 유무를 예측하는 방식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2007년부터 수천 종의 독성물질을 탐색할 수 있는 프로그램 ‘톡스캐스트’를 만들고 있으며 2015년쯤 완성할 예정이다.

줄기세포를 특정 장기로 배양해 독성을 평가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현재는 간과 신장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이다. 간과 신장은 몸속에 들어온 물질을 걸러내고 배출하는 장기여서 독성에 대한 반응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성평가연구소는 사람의 배아줄기세포에서 유래한 간 분화세포에 화학 물질을 넣어 독성을 평가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이 연구소의 분자독성연구센터 박한진 선임연구원은 “간 분화세포에서도 임상시험에서 나타난 독성 반응과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검증하는 단계”라며 “사람의 세포로 직접 독성을 평가하기 때문에 실험동물을 사용해 독성을 평가하는 전(前)임상시험을 축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장품 회사에서는 피부의 민감도와 부작용을 예측하는 데 인공피부를 사용한다. 유럽연합(EU)이 2009년부터 화장품 원료 등에 대한 동물실험을 금지하고 동물실험을 수행한 화장품 원료 및 제품의 판매를 금지하도록 결정했기 때문이다. 인공피부는 사람의 피부세포를 떼어내 배양한 것으로 각질층까지 재구성해 만들었다. 진짜 피부와 80% 정도 비슷해 실험동물 없이도 다양한 화학물질을 평가할 수 있다.

○ 대체시험법, 초기 독성 평가에 유용

대체시험법이 대안이 될 순 있지만 완전한 대체는 힘들다는 지적이 있다. 대체시험법으로 물질에 대한 직접적 반응은 볼 수 있어도 그 물질이 간, 신장 등 특정 장기에 이르는 과정은 알 수 없다. 실제로 어떤 물질을 먹거나 피부에 바르거나 주사기로 혈액에 주입하는 등의 방법에 따라 몸은 다르게 반응한다.

실험 대상이 되는 특정 장기 이외에 몸 전체에서 어떤 현상이 복합적으로 발생하는지도 파악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간에 독성 물질이 들어가면 뇌에서도 영향이 나타나는데 컴퓨터나 줄기세포로 이런 현상을 알긴 힘들다는 얘기다.

한국실험동물학회 이사장인 서울대 수의대 박재학 교수는 “대체시험법은 다량의 물질을 빠르게 검사할 때 장점을 발휘하는 만큼 실험동물을 대신해 초기 독성 평가에 쓰일 수 있다”며 “동물을 쓰지 않는 방법을 우선 고려하고, 동물의 수를 줄이며, 고통을 최소화한다는 실험동물 윤리의 3원칙을 위해서도 대체시험법 연구는 앞으로 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실험동물학회와 한국동물실험대체법학회는 16일 처음으로 합동 심포지엄을 개최해 대체시험법에 관한 문제를 논의한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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