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중년남성 정신건강ABC]<하>불안장애

  • Array
  • 입력 2010년 3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지나친 불안감은 질병… 적극 치료를

《# 의사 장모 씨(44)는 최근 학회장으로 선출될 만큼 전공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장 씨는 운전을 할 수 없다. 집과 병원을 오가려면 올림픽대로를 타야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그곳만 올라서면 사고가 날 것 같은 극심한 공포감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다른 도로는 괜찮겠지 생각하며 우회도로를 이용해 운전해 보려 했다.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공포감은 더 심해졌다. 결국 운전대를 놓았다.

# 대기업 임원 차모 씨(55)는 업무를 한참 보다가 심장이 빨리 뛰는 걸 느꼈다. 뒷골도 땅겼고, 숨이 차는 증상도 나타났다. 증상은 20여 분간 계속됐다. 이러다 곧 죽는 게 아닐까 싶어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차 씨는 다시 같은 증상이 나타날까봐 두려움에 시달린다. 그 후 두세 차례 같은 증상이 나타났고, 승진을 앞둔 시점이지만 업무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회사를 관둬야 할지 고민이다.》
감정을 드러내는 걸 나약한 것으로 판단하는 풍토 때문에 중년남성의 정신건강이 위협을 받고 있다. 40대 중년남성이 모든 연령대와 비교할 때 가장 불안장애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감정을 드러내는 걸 나약한 것으로 판단하는 풍토 때문에 중년남성의 정신건강이 위협을 받고 있다. 40대 중년남성이 모든 연령대와 비교할 때 가장 불안장애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병으로 인정 않고 방치해 증세 악화

스트레스를 참고 또 참으면 억눌린 감정이 병이 된다. 바로 공포장애, 공황장애와 같은 불안장애다.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예기치 못한 위험에 대비하려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다. 누구나 불안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는 상황인데도 불안감을 느끼거나 유난히 불안해할 때는 장애로 볼 수 있다.

장 씨처럼 특정 상황이나 대상에 불합리한 공포심을 느껴 회피하려는 ‘공포장애’, 차 씨처럼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극단적인 불안감이 나타나는 ‘공황장애’가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남에게 도움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곳은 아예 가지 않으려는 ‘광장공포증’, 특정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강박장애’도 흔한 불안장애다.

불안장애는 중년 남성에게 가장 많다. 보건복지부의 ‘2006년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10대의 불안장애 환자 비율(유병률)은 2.8%다. 그러나 40대는 3.7%로, 전체 평균인 3.2%를 넘으며 가장 유병률이 높았다.

문제는 중년 남성들이 오래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감정을 안 드러낸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의 불안장애를 인정하지 않는다. 명백한 질병인 불안장애를 의지가 약해 나타나는 현상쯤으로 여기는 것. 여성들이 초기에 의사를 찾아 상담하는 것과 달리 중년 남성들은 그대로 방치해 증상을 악화시킨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불안장애를 술로 달래는 중년 남성이 많다. 그들은 간염이나 위염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뒤늦게 정신과적 문제를 발견한다”고 말했다.

○약물-인지치료 병행땐 1년내 증상 호전

불안장애 환자들은 안절부절못하고 짜증을 잘 내며 예민하다. 들이닥치지도 않은 위험을 미리 두려워하고 최악의 사태만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육체적 질병이 없는데도 심장박동 증가, 소화 불량, 설사, 변비, 땀, 근육 긴장, 두통, 불면증 등과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심하면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작동하는 바람에 멀쩡한 신체가 응급 상태가 되기도 한다.

불안장애 환자의 대다수가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큰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이를 방치하면 스트레스가 뇌를 압박하면서 뇌의 기능을 떨어뜨린다.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가바 등 신경 전달 물질이 과잉 분비돼 자율신경계에 손상이 생긴다. 측두엽, 전전두엽 등 뇌 구조에 이상이 생기기도 한다.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는 “불안장애 환자들은 일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한계에 부닥칠 경우 스트레스가 극도로 커지는데, 이때는 삶의 목표를 다시 설정하는 식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불안장애는 무엇보다 조기 진단과 적극적인 치료가 필수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과 교수는 “불안장애는 우울증, 알코올의존증 등 다른 정신의학적 문제와 결합되므로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극적으로 좋아지기 때문에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약물 치료와 인지행동 치료가 대표적인 치료 방법이다. 약물을 병행하는 치료가 효과가 높다. 대표적인 약물로는 SSRI 계열의 항우울제와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항불안제다. 8∼12개월 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한다.

인지 치료의 핵심적인 요소는 사소한 신체 감각을 죽음과 같은 극단적 상황으로 잘못 받아들이려는 사고방식을 교정하는 것이다. 흥분된 교감신경을 가라앉히는 데는 한 손을 가슴에, 다른 한 손을 배에 대고 호흡하는 복식호흡법이 좋다. 근육에 힘을 줬다 뺐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신체를 느슨하게 하는 근육 이완 훈련이 도움이 된다. 그 전까지 일부러 피했던 상황이나 장면을 일부러 보여주면서 직접 부딪쳐 극복하도록 하는 노출요법도 많이 활용된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