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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박동희의 삶… PS땐 더 아련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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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박동희의 삶… PS땐 더 아련하죠”

입력 2008-10-11 08:18수정 2009-09-24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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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속구 투수’ 박동희 동생 박훈희

○‘박동희표 강속투’ 기억하시나요

롯데 자이언츠 1992년 우승의 주역이었던 투수 박동희.

155km라는 한국야구 사상 최고의 강속구를 구사하며 ‘직구를 마구처럼’ 던졌던 박동희를 기억하지 못할 야구팬은 없다.

1990년 대구에서 열린 삼성전에서 6회 구원등판 해 4이닝 동안 14타자를 상대로 무려 10개의 삼진을 뽑아내 야구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던 첫 데뷔전. 이듬해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3회 등판해 연장 13회까지 투혼을 불태웠던 경기는 한국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로 꼽힌다.

박동희 야구 인생에서 가장 멋진 피칭이었고 별명 ‘슈퍼베이비’도 그렇게 탄생했다. 불꽃처럼 타올랐지만 그 시기가 길지는 못했던 비운의 스타 박동희. 장점은 엄청 많았지만 당시 어떤 지도자도 그의 타고난 강속구를 살려주지 못했고 결국 그는 큰 기대와는 달리 조용히 그라운드를 떠났다.

만일 메이저리그 출신의 로이스터 감독이 그때 박동희를 만났더라면 그의 야구인생은 전혀 달라졌고 빅리거 박동희를 우리가 봤을지도 모른다.

은퇴 뒤 팬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던 그는 2007년 3월 새벽 자신의 차를 몰고 가다 사고를 당해 직구와 같았던 인생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39살의 너무나 아까운 나이에 부산의 낳은 또 한 명의 투수는 유명을 달리했다.

○“졸음운전 사고사 아닙니다”

8일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리던 부산. 고 박동희의 친동생 박훈희(37) 씨는 형이 운영하던 일식집 아스카에서 TV를 통해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형 생각이 많이 납니다. 오늘 같은 날은 특히 더 그렇죠.”

그라운드를 떠난 뒤 형은 서울의 한 건설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의 진짜 희망은 사회인 야구, 특히 유소년 야구 육성에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쳐 한국 야구계의 들보를 키워내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열심이셨죠. 한 번 ‘이거다’ 싶으면 옆을 안 돌아보는 스타일이었거든요. 김포, 과천 쪽에 유소년 야구장 부지를 확보하고 공사만 남겨두고 있었어요. 명절도 쇨 겸해서 부산에 잠시 내려와 있었는데, 그만 사고가 나고 만 거죠.”

지난해 3월 22일 새벽. 박동희는 가게 일을 마치고 어머니를 뵙기 위해 차를 몰고 본가로 가다 그만 전신주를 들이받고 현장에서 숨졌다.

“차마 볼 수가 없다”는 형수를 대신해 박훈희 씨 내외가 병원으로 가 형의 시신을 확인했다. 당시 언론에는 사고원인이 새벽 졸음운전 때문이라고 보도됐다. 그러나 사고현장을 직접 본 박훈희 씨는 차의 핸들이 급격히 꺾여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형이 뭔가를 피하려다 사고가 난 것이라 여겼다.

이후 사고를 목격했다는 어느 택시 기사의 증언이 있었다. 한 여성이 무단횡단 하는 것을 피하려다 그만 사고가 난 것이었다. 박 씨는 “한 사람을 구하고 형이 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야구사랑 후배사랑

형이 운영하던 가게는 박훈희 씨 내외가 맡고 있다. 미망인 배 씨는 대학에 출강해 전공인 일본어를 가르친다. 박 씨와 고인은 3살 터울이었지만 형제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탓에 형은 늘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엄하면서도 자상한 형이었습니다. 부산고 시절 형이 연습하는 것을 구경가곤 했는데 늘 오지 말라고 혼을 내면서도 막상 연습이 끝나면 맛있는 것을 사주며 즐거워했죠.” 옷 하나를 사도 자신 것과 함께 동생 옷을 사고, 외국에 나가면 늘 동생의 선물을 사들고 오던 형이었다.

고인은 후배들을 잘 챙겨주는 따뜻한 선배이기도 했다. 특히 어려운 2군 선수들과 신인 후배들에게 정을 베풀었다. 김기태, 박정태, 배영수, 임창용, 박한이, 손민한 등이 특히 고인을 따랐다. 가게에는 공필성과 박정태의 유니폼이 고인의 것과 함께 걸려 있었다.

출상을 할 때 사직구장을 한 바퀴 돌고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구장 측에서 선뜻 운동장 문을 열어줘 그가 밟았던 마운드 위에서 노제를 지낼 수 있었다. 마침 이 날은 롯데 선수들이 구장에서 연습 중이었다.

“형이 죽기 전 제게 말했습니다. ‘너도 야구를 좋아하니까 유소년 야구가 잘 되면 나를 도와달라’고. ‘너에게 빚이 많다. 앞으로 많이 잘 해주마’고. 아직도 형이 죽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냥 먼 곳에 가 있는 것 같아요.”

박 씨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광속의 시원시원한 직구로 강타자들을 연속 삼진으로 돌아서게 만들었던 투수 박동희는 ‘불멸’의 이름으로 야구팬들의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

부산|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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