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동네기업]<5>시노자키제작소

  • 입력 2008년 9월 5일 03시 04분


이노하라 다다히코 시노자키제작소 전무가 정밀계측기기가 장착된 레이저 가공장비의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도쿄=천광암 기자
이노하라 다다히코 시노자키제작소 전무가 정밀계측기기가 장착된 레이저 가공장비의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도쿄=천광암 기자
레이저로 머리카락에 글자를 새긴 모습. 사진 제공 시노자키제작소
레이저로 머리카락에 글자를 새긴 모습. 사진 제공 시노자키제작소
“중국산 저가 공세 레이저기술로 분쇄”

레이저로 5초만에 감자껍질 벗기기 기술 확보

“기술형 中企 살길은 항상 새영역 도전하는 것”

일본 도쿄(東京)의 관문 하네다(羽田)공항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오타(大田) 구 쇼와지마(昭和島).

이노하라 다다히코(井ノ原忠彦) 전무를 포함해 10명이 근무하고 있는 시노자키(篠崎)제작소 실험공장에는 현미경 등 정밀계측기기가 장착된 대형 레이저 가공장비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공장 내부 안내가 끝나자 이노하라 전무는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레이저가공의 기초 원리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레이저는 여러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일반적인 빛과는 달리 똑같은 지름을 유지하면서 한 방향으로 직진하는 빛이다. 에너지가 높은 레이저는 물질의 분자구조를 끊을 수 있어 두꺼운 철판을 자르거나 정밀한 가공을 하는 데 응용할 수 있다.”

그는 “레이저로 철판을 가공하는 업체는 많지만 정밀가공을 하는 기업은 일본에서도 손가락을 꼽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회의실 벽에 걸린 사진 한 장을 가리켰다.

○ 마이크로미터의 세계

사진에는 표면이 고르지 않은 검은 봉에 ‘엑시머레이저(EXCIMERLASER)’라는 영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노하라 전무는 “현미경으로 확대 촬영했기 때문에 봉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머리카락”이라면서 “글자 선의 굵기는 0.004mm가량”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 출판사가 고교생들에게 미세가공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교과서에도 실었지만, 고난도 기술은 아니다”면서 “우리 회사에서 하는 일은 정밀성이 이보다 몇 배나 필요한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레이저는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단위의 미세(微細)가공뿐 아니라 다른 실생활 분야에도 응용할 여지가 많다고 한다. 일례로 시노자키제작소는 레이저를 이용해 감자 껍질을 벗기는 기술 등을 개발해 놓은 상태다.

감자나 사과에 레이저를 쏘면 껍질과 내용물이 닿는 부분의 수증기가 폭발을 일으키듯 반응하는 원리를 응용한 기술이다. 감자 하나의 껍질을 벗겨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5초. 이노하라 전무는 “이 기술을 이용하면 감자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크게 줄일 수 있다”면서 “아직 상업성은 없지만 환경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다 보면 각광을 받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 로펌 식 비즈니스 모델

레이저는 금속의 뒤틀림이나 피로현상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정밀한 가공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결정적인 단점도 있다. 선반이나 드릴 등을 이용하는 기계식 가공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점.

따라서 양산제품에 사용하는 부품을 레이저 미세가공 기술을 이용해 만드는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연구개발 과정에서 고도의 정밀성이 필요한 견본품을 만들 때에 레이저 미세가공 기술을 사용한다.

시노자키제작소 실험공장을 찾는 고객도 신제품 개발과정에서 한시적으로 레이저 미세가공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는 기업들이다.

기본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기업에 법률상담을 해주고 변호사 수와 그들이 사용한 시간을 곱해 비용을 청구하는 법률회사(로펌)와 비슷하다.

시노자키제작소 직원 1명의 시간당 요금은 4만 엔으로, 작은 동네공장이 제공하는 서비스치고는 결코 싸지 않은 편이다. 이 회사를 찾는 고객기업은 반도체회사, 전자제품회사, 자동차회사, 의료기기회사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걸쳐 연간 350여 개에 이른다.

이노하라 전무는 “일부 기업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초기에만 도움을 받고 자력개발을 하는 회사도 적지 않다”면서 “하지만 수개월을 허비한 뒤 다시 찾아오는 사례가 많다”며 웃었다.

○ 첨단과 양산의 조화

단순한 기계식 부품가공 업체이던 시노자키제작소가 레이저 미세가공 분야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은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일본 기계가공업체는 1980년대 들어 중국 등이 뒤쫓아 오면서 원가경쟁력을 급속히 상실했다. 일본의 높은 땅값과 인건비로는 수지를 맞출 수가 없었다. ‘해외 진출인가, 도쿄 잔류인가’의 갈림길에서 시노자키제작소는 후자를 택했다.

그 대신 시노자키제작소는 땅값 비싼 도쿄에서 살아남으려면 철저한 ‘미니화’와 고부가가치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레이저 미세가공만큼 이런 조건에 딱 들어맞는 분야는 없었다.

하지만 수요가 불규칙한 레이저 미세가공에만 의지해서는 사업을 유지할 수 없었다.

부가가치가 크지 않아도 안정적인 매출을 올려줄 보완책이 필요했다. 시노자키제작소가 찾아낸 해법은 실험공장 입구에 설치된 가로, 세로 각각 1m에 높이 1.5m 크기의 무인로봇기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무인로봇기계는 가장 흔한 기계부품 중의 하나인 너트를 자동으로 가공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노하라 전무는 “평범한 너트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고성능 컬러복사기에 사용하는 특수 너트”라면서 “품질은 물론이고 가격도 중국산에 비해 훨씬 싸다”고 자랑했다.

그는 “하지만 현재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어도 언젠가는 우리를 능가하는 경쟁자가 나올 것”이라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것이 기술형 중소기업의 숙명”이라고 덧붙였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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