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백번 부른 ‘어느 60대…’에 난생처음 목이 멨네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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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만에 7집 낸 데뷔 30년 ‘블루스 기타의 거장’ 김목경

기타만 잡으면 행복하다면서, 이런 표정을 짓는다.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보다 그늘에서 분투한 대중음악 거장. 기타리스트 김목경은 서울 용산구의 소극장에서 19일 오후, 관객이 없는데도 진득한 ‘된장찌개’를 끓여냈다. 특유의 절절한 블루스 연주 말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기타만 잡으면 행복하다면서, 이런 표정을 짓는다.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보다 그늘에서 분투한 대중음악 거장. 기타리스트 김목경은 서울 용산구의 소극장에서 19일 오후, 관객이 없는데도 진득한 ‘된장찌개’를 끓여냈다. 특유의 절절한 블루스 연주 말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블루스 기타는 감정의 서커스다.

이게 뭐라고…. 곡예사는 금속의 외줄에 손가락 모두를 걸고 위태롭게 떨며 운다. 그 처절한 진동을 끝내 정서적 진폭으로 치환하려는 끈덕진 사투가, 블루스다.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61)이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무려 12년 만의 정규앨범, 7집 ‘김목경 7’을 내놨다. 첫 곡 ‘외출’을 재생하자 30년 농익은 곡예사의 국숫발 같은 음표들이 탱글탱글 올라온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 못 들어 창밖을 보니…’ 이어지는 목소리는 칼칼한 국물 같다. 서울 용산구 청파로에 위치한 공연장 ‘블루스소사이어티’에서 19일 오후 그를 만났다.

“공연하는 게 좋았지, 새 앨범 욕심은 없었어요. 근데 3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음반 제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목경은 ‘한국의 에릭 클랩턴’으로 통한다. 2003년 미국의 블루스 성지, 멤피스에서 열리는 ‘빌 스트리트 뮤직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3일간 공연했다. 현지 매체가 ‘클랩턴을 보는 듯하다’고 극찬했다. 그 뒤 일본, 미국, 노르웨이 등 세계를 누비며 고독한 블루스 한류를 일궜다.

이달 나온 신작 ‘김목경 7’의 표지.
이달 나온 신작 ‘김목경 7’의 표지.
‘거봐, 기타 치지 말랬잖아’(2004년)란 곡에서 ‘아무도 몰라/히트곡이 하나도 없다네’라고 자조한 그는 사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원래 가수다. 고 김광석(1964∼1996)이 불러 유명해진 노래.

“광석이가 어느 날 묻더군요. ‘형, 2집 언제 내요?’”

김광석은 진즉에 알아봤다. 김목경이 영국에서 2년간 블루스 밴드 활동을 한 뒤 귀국하며 낸 1집 ‘Old Fashioned Man’(1990년)과 수록곡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진가를…. 김목경의 광팬이자 술친구였던 김광석이 “형, 이 돈 보태요” 하며 건넨 기백만 원으로 김목경은 6년 만에 2집을 낼 수 있었다. 그해 ‘광석이’는 돌아갔다. 자신의 유작 ‘다시 부르기 2’에 ‘어느 60대…’를 남긴 채….

김목경은 요즘도 김광석과 자주 다니던 포장마차에 곧잘 혼자 들른다. 라면에 소주 한 병 시킨다. 신작 수록 곡 ‘비 오는 저녁’에 등장하는 ‘희미한 불빛 포장마차’가 거기다. 서울 여의도 모처.

“가사는 늘 실화를 바탕으로 써요. 자연스러운 게 좋아서요.”

그런데 정작 신곡 ‘엄마생각’엔 가사가 없다. “가사를 붙이자니 너무 슬퍼질 것 같아서”란다. 사람 대신 애먼 기타가 눈물을 줄줄 흘릴 수밖에….

30년 동안 골백번 부른 ‘어느 60대…’를 부르다 난생처음 목이 멘 게 요즘이다. 노래로나 상상한 그 나이에 어느덧 자신이 다다랐다.

“29세 때 지은 곡이에요. 런던에 살 때 제 앞집에 살던 현지 노부부를 보며 썼죠.”

악기를 품으면 그는 아직 소년이다. 아직도 침대 맡에 기타를 둔다. 불 끄고 누워 잠들 때까지 친다. 이만큼 재미난 게 없다. 몇 해 전 미국의 기타 명가 펜더사(社)는 그에게 ‘김목경 기타’를 헌정했다. 신중현, 신대철, 김도균, 김목경. 한국에서 넷만 이룬 쾌거다.

“신곡 ‘내 기타가 하는 말’은 슬라이드 주법으로만 채웠어요. 정상 조율과 변칙 조율을 섞어 3분여를 달렸죠.”

그룹사운드 ‘무당’, 한대수의 옛 곡도 신작에 자기 스타일로 재해석해 담았다. 당초 29일 열기로 한 30주년 콘서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조금 미뤄뒀다.

“저는 행운의 사나이예요. 방송국에서 안 부르면 또 어떻습니까. 연주만 하면 행복해지는데. 관객이 열 명뿐이라도 설 무대만 있으면 전 족해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김목경#김목경 7#블루스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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