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식의 스포츠&]축구대표 감독 선임, ‘빨리’보단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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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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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은 “한국 축구 철학에 적합한 감독을 선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DB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은 “한국 축구 철학에 적합한 감독을 선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DB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요즘 한국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문제로 무척이나 시끄럽다. 대한축구협회가 차기 대표팀 사령탑 선임 절차에 돌입했다고 공식 발표한 지 한 달 가까이 됐고 아직 미정이다. 그 사이 여러 외국인 감독의 실명이 거론된 관련 기사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급기야 축구협회는 “언론의 추측성 보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감독 선임은 비공개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자제를 호소했다.

그러면서 “축구협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축구인, 국제 이적 시장에 정통한 인물 등을 출처로 하는 기사는 걸러서 읽을 필요가 있다. 맞는 경우도 있지만 틀릴 때가 많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동안의 기사가 모두 ‘아니면 말고’ 엉터리 기사는 아니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작금의 사달은 축구협회가 자초했다. 2회 연속 월드컵 16강 진출 실패에 실망한 축구팬들은 4년 전 ‘울리 슈틸리케 깜짝 발탁’ 같은 시행착오를 더 이상 원치 않는다. 한편 언론은 ‘사회감시’라는 막중한 책무를 지니고 있다. 두 손 놓고 있다가 나중에 보도자료 나오면 그대로 전달하는 게 언론의 소임은 아니다.

현재의 상황은 축구협회가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할 때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력해야 할 때다. 맹목적 비난이 아닌 한국 축구 발전을 염원하는 팬들의 따끔한 지적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축구팬이자 국민인 그들은 그럴 권리가 있다. 축구협회는 대한체육회 산하 60개 정회원 협회 및 연맹 중에서 가장 많은 체육진흥기금을 매년 지원 받고 있기에 그렇다.

‘월드컵이라는 대회 수준에 걸맞고,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한국의 격에 맞아야 한다. 또한 월드컵 예선 통과나 세계적 리그 우승 경험이 있어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결과(한국을 맡기 전에 거둔 업적)가 없었다. 결과 없는 감독은 선택하지 않겠다.’

축구협회가 밝힌 새 대표팀 감독의 선정 기준은 상당한 ‘수준’이다.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힌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과연 그런 기준을 충족시키면서, 연봉과 코칭스태프 구성 등 구체적인 계약조건까지 양측이 합의에 도달할 감독 후보가 몇이나 될까. ‘유명하기보다는 유능한 감독을 뽑겠다’는 의지 표명 수준이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축구협회는 접촉설이 나돌았던 루이스 스콜라리 감독(브라질)에 대해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서 한국대표팀을 이끌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실상 후보군에서 제외시켰다. 이는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한국대표팀에 최적의 감독이라고 낙점했어도 계약이 성사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실제로 협상 난항이 감지되고 있다. 이틀 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외국인 감독 영입을 위한 사재(私財) 40억 원 긴급 투입’은 그 증거다. 그렇게 모셔온 감독이 한국대표팀에서 연착륙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차원의 난제다.

축구협회는 9월 국내에서 열리는 친선 A매치(7일 코스타리카, 11일 칠레) 이전까지 새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 한국축구대표팀에 필요한 것은 감독의 빠른 부임이 아니라 제대로 검증된 능력 있는 감독이다. 그렇기에 9월 A매치는 큰 의미가 없다. 손발 맞출 시간과 자신의 색깔을 입힐 기간이 한 달도 안 될 새 감독에겐 이래저래 고역이다. 자신이 한 것도 없는데, 이기면 겸연쩍을 것이고 지면 곤혹스러울 것이다.

새 감독 선임을 서두르다 자칫 ‘슈틸리케 전철’을 밟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2014년 9월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뜬금없이 등장한 슈틸리케는 소통 부재와 남 탓, 선수 탓으로 일관하다 결국 성적 부진으로 2017년 6월 경질됐다. 자진 사임이 아닌 경질이었기에 계약기간 4년의 잔여 연봉을 챙겨갔다. 그런 슈틸리케가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한국은 3전 전패할 것”이라는 ‘악담’까지 했기에 괘씸하기까지 하다.

손자병법에는 네 종류의 장수(將帥)가 등장한다. 용장(勇將)은 지장(智將)을 이기지 못하고, 지장은 덕장(德將)보다 한 수 아래이며, 덕장도 복장(福將)에게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복장은 바로 운장(運將)을 뜻한다. 그런데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로 불린다. 운장이 아니면 버텨내기 힘든 자리다. 되돌아보면 2002 한일 월드컵 4강 쾌거를 이룬 거스 히딩크 감독은 대표적인 운장이 아닐까.

아무쪼록 한국 축구를 희망차게 이끌어갈 복장을 학수고대한다. 그래서 2022 카타르 월드컵 때는 16강 진출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달갑지 않은 ‘희망 고문’은 없었으면 좋겠다.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ysahn@donga.com
#한국축구대표팀#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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