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다이어트의 불편한 진실]‘탄수화물 적게, 지방은 많이’ 감량효과 1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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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이 비만의 주범이라는 오해

늘어난 뱃살을 보노라면 ‘지방’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한다. 배 속에 빼곡히 들어찬 지방을 언젠가 내 몸에서 퇴출하리라 다짐하면서 지방이 많이 함유된 식품은 쳐다보지도 않으려 한다. 그러나 지방을 많이 먹는 것과 살이 찌는 것의 상관관계는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동아일보DB
늘어난 뱃살을 보노라면 ‘지방’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한다. 배 속에 빼곡히 들어찬 지방을 언젠가 내 몸에서 퇴출하리라 다짐하면서 지방이 많이 함유된 식품은 쳐다보지도 않으려 한다. 그러나 지방을 많이 먹는 것과 살이 찌는 것의 상관관계는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동아일보DB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은 잔 루이즈 칼망이라는 여성이다. 그는 1875년 2월 21일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인 아를에서 태어나 1997년 8월 4일 사망할 때까지 122년 하고도 6개월, 정확히는 4만4724일을 살았다(1999년판 기네스북에 등재). 85세에 펜싱을 시작하고, 100세가 넘도록 자전거를 탔던 할머니는 모든 음식에 올리브유를 발라서 먹고, 일주일에 초콜릿 1kg을 규칙적으로 먹었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끼리 가장 흔하게 하는 말이 있다. “지방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뚱뚱해진다. 그래서 건강도 해친다.”

무심코 믿었던 이 말이 진실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세계 최장수인 칼망의 사례는 어떻게 설명할 텐가. 물론 한 사람의 사례를 일반화하려는 건 아니다. 아래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분명 지방은 억울하다고 할 수 있다. 지방은 비만의 결과이지 결코 비만의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누명을 벗지 못했던 지방의 ‘한’을 오늘 풀어주고자 한다.

○ 지방의 ‘무죄’를 증명하는 증거들

고열량의 대명사 초콜릿 얘기를 해보자. 지방과 설탕으로 만들어진 초콜릿은 한때 비만을 초래하는 ‘주범’으로 낙인찍힌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초콜릿이 오히려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초콜릿 다이어트’에 관한 책까지 나올 정도다. 특히 ‘다크’ 초콜릿의 효용성을 강조하는 사람이 많다. 다크 초콜릿은 설탕의 비율을 줄인 대신 카카오 분말을 조금 더 넣은, 즉 카카오지방의 비율을 많이 높인 것이다. 보통의 초콜릿보다 당연히 열량이 더 높다. 여기서 열량(지방)이 높을수록 다이어트에 좋다는 ‘역설적인’ 추론이 가능해진다.

지방을 줄였을 때 오히려 비만이 오기도 한다. 미국 퍼듀대 연구팀이 지난해 국제학술잡지 ‘행동신경과학(Behavioral Neuro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는 “지방 대체제(열량과 콜레스테롤이 없는 합성 지방)가 살을 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오히려 살이 찌도록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 포함됐다. 미국의 경우 저칼로리 음식 및 음료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했는데도 비만인구는 매년 3%씩 늘어나고 있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2007년 “저지방 식품이 곧 저칼로리 식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저지방 식품을 먹은 실험대상자들은 식사량이 많아져 결국 평균 28%나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더라는 게 요지다. 텍사스대 의대의 헬렌 하즈다 박사는 474명을 다이어트 음료를 마신 그룹과 마시지 않은 그룹으로 나누어 허리둘레를 측정(평균 9.5년간 세 차례씩)했다. 그 결과 다이어트 음료를 마신 그룹의 허리둘레 증가비율이 훨씬 높았다.

일명 ‘황제 다이어트’라고 불리는 ‘앳킨스 다이어트’는 지방의 누명을 벗겨줄 핵심 증거 중 하나다. 로버트 앳킨스 박사는 1963년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되 지방과 단백질은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주창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예방의학연구소의 크리스토퍼 가드너 박사는 과체중 여성 311명(평균 40세)에게 그룹별로 네 가지 다이어트를 시도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탄수화물은 적게, 지방은 많이’ 먹는 앳킨스 다이어트가 가장 효과(평균 4.7kg 감량)가 컸다. 탄수화물을 많이, 지방을 적게 먹는 ‘런(Learn) 다이어트’는 2.59kg, 탄수화물-단백질-지방 비율을 4 대 3 대 3으로 섭취하는 ‘존(Zone) 다이어트’는 1.61kg 감량에 그쳤다. 물론 앳킨스 다이어트의 효과도 6개월뿐이다. 2년이 지나면 대부분은 실패한다. 그러나 단기간이나마 효과를 볼 수 있었던 다이어트 방법이 ‘지방을 많이 먹는’ 방법이었다는 것은 분명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칼로리 생각하다 건강 망친다

지방을 ‘죄인’으로 만든 용의자 중 하나는 칼로리 측정법이다. 칼로리 측정은 살을 빼기 위해 고안한 것이 아니다. 100여 년 전 미국의 농화학자 윌버 올린 애트워터는 열량(영양)을 좀 더 잘 공급하기 위해 칼로리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영양과잉보다는 영양부족이 더 큰 이슈였다. ‘다이어트’라는 용어도 원래는 적당한 영양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국의 농업과학자 존 보이드오어가 1936년 펴낸 ‘음식, 건강과 소득’을 보더라도 그렇다. 책에는 영국 전체인구 중 규정 식사량을 채울 수 있는 소득층은 절반뿐이었고, 인구의 10%는 영양부족 상태였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칼로리는 타파의 대상이자 사람들의 적이 됐다. 논리적 구조는 이렇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g당 4Cal의 에너지를 갖고, 지방은 g당 9Cal를 지니고 있다. 지방을 먹으면 탄수화물이나 단백질과 같은 양이더라도 두 배 이상의 에너지를 섭취하는 것이 된다.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서 칼로리를 소모해도 지방을 많이 먹으면 소용없다는 것이다. 산술적으로는 무조건 맞는 얘기다.

그런데 한 가지, 전제가 잘못됐다. 칼로리 이론은 어떤 조건에서든 섭취한 모든 음식이 일정하게 소화, 흡수된다고 가정하고 있다. 알코올은 g당 7Cal의 열량을 갖고 있다. 지방보다는 낮지만 탄수화물이나 단백질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도 애주가라고 ‘무조건’ 뚱뚱하지는 않다.

우리 몸이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은 포도당(탄수화물)이다. 그러니 흡수도 잘한다. 몸에는 주요 에너지원인 포도당을 세포 안으로 집어넣는 펌프가 있다. 반면 지방을 강제적으로 세포에 넣어주는 펌프는 없다. 먹는 족족 흡수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반면 비축용으로는 지방이 탄수화물보다 훨씬 우월하다. 무게당 열량이 훨씬 높고, 수분도 불필요하다. 지방끼리 쉽게 뭉쳐 저장이 편하고 독성도 없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소모된다. 쓰고 남은 포도당이 비축용 지방으로 전환되는 이유다. 정리하자면 비만은 ‘먹어서 흡수되는 지방’보다는 ‘포도당이 전환돼 저장된 지방’의 책임이다.

지방 섭취를 무조건 줄이면 포만감이 작아지고, 먹는 즐거움도 사라진다. 자칫 더 큰 폭식을 불러올 수도 있다. ‘진범’을 잡지 못한 채 엉뚱한 용의자를 괴롭히는 과오는 범하지 말자.

최낙언 향료연구가 dbclea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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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지방#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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