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27>‘방 한칸의 세계’ 동천석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완도군청 제공
완도군청 제공
전남 완도군 보길도 부용동의 동천석실(洞天石室)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놀랐다. 어떻게 이 자리를 골랐으며, 어떻게 딱 한 칸짜리 방을 만들 수 있었으며, 어떻게 이 많은 이야기를 여기에 담을 수 있었을까 하는 놀라움이었다.

동천석실에는 마루도 없고 부엌도 없고 마당도 없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이 다 있다. 집 바깥에 집이 있다. 집 안에 집이 있는 경우는 많지만 집 바깥에 집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다. 집은 바람과 비와 눈을 피하기 위한 피난처다. 집 바깥에 집이 있을 경우 이 대기 현상을 피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집은 그것을 감행하고 있다. 조선집들이 미니멀의 극단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동천석실은 그 끝을 보여주는 듯하다.

동천석실은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이다. 말 그대로 한 칸짜리 집이다. 이 집을 지은 이는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1587∼1671)다. 그의 건축은 절묘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조선 최고의 건축가로 고산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풍수의 달인이었고, 뛰어난 건축가이자 음향학자였으며(부용동 입구 정자인 세연정의 판석보는 물소리를 효과적으로 내기 위해 일부러 안을 비우며 구축했다), 공연기획자였다(세연정은 고산의 극장이다).

동천석실은 금쇄동과 부용동 정원을 꾸민 그의 솜씨가 가장 간단한 모습으로 압축돼 있는 곳이다. 그도 이것을 의식했는지 이 석실의 이름을 가장 원초적인 동시에 가장 큰 이름이고, 가장 지고의 장소인 ‘동천’이라고 명명했다. ‘석실’은 돌로 된 방을 의미하지만 산중에 깊이 숨어있는 방이란 뜻이다. 말하자면 이 이름은 ‘동천의 석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동천’이자 ‘석실’이라는 의미다.

동천석실은 아슬아슬하게 바위 위에 있다. 바로 앞에는 바위 두 개가 마치 갈라진 듯 서있는데 고산은 이곳에 도르래를 설치해 필요한 물건들을 실어 날랐다. 그 앞의 차바위는 고산이 차를 끓이던 장소다. 찻상을 고정하기 위해 파 놓은 홈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연못도 있다. 동천석실 정자 오른쪽 암벽 사이에는 석간수가 솟고 그것을 받아 모아 연지를 만들었다. 벼랑 쪽을 석담(石潭)이라 하고 바깥쪽 연지를 석천(石泉)이라 한다. 이 사이의 통로가 바로 희황교다. 동천석실은 방 한 칸이지만 그 한 칸이 거느린 세계는 상징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깊고 넓다.

시인·건축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