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9년 소련 핵잠수함 K-19 충돌사고

  • 입력 2008년 11월 15일 02시 58분


몇 년 전 한국에서도 개봉된 영화 ‘K-19: The Widowmaker’.

해리슨 포드와 리암 니슨이 열연한 이 영화는 수십 년 동안 은폐됐던 소련의 핵잠수함 사고에 얽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상당 부분 각색이 됐지만 최초 시나리오를 사고 잠수함에 탑승했던 승조원들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들어 수정을 가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K-19의 별명은 ‘The Widowmaker(과부제조기)’로 돼 있지만 소련에선 ‘히로시마’라는 좀 더 음산한 닉네임으로 불렸다. 원자폭탄이 투하돼 잿더미가 된 도시처럼 K-19는 태생부터 불안한 존재였다.

호텔급 핵잠수함 제1번함으로서 최초로 핵미사일을 장착한 K-19는 건조부터 첫 취항 직전까지 이미 각종 사고로 10여 명이 생명을 잃었다.

1959년 건조 과정에서 코르크 접착작업을 하던 노동자 2명이 화재로 목숨을 잃었고 탱크 내부에 고무를 부착하던 노동자 6명이 가스질식으로 사망했다. 진수식에서는 선체에 던진 샴페인 병이 깨지지 않고 튕겨 올랐는데 이 또한 불길한 징조였다.

K-19는 시험운항 중에도 치명적인 결함을 노출했다. 밸브나 파이프 연결 등 기초적인 부품에서 결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미국과의 핵 군비 경쟁에 열중하던 소련 지도부로선 그런 ‘사소한 문제’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K-19의 비극은 취역 1개월 만인 1961년 6월에 벌어졌다. 원자로의 배관에 균열이 생기면서 내부 온도가 800도까지 올라 폭발 직전에 이르렀고 응급반이 원자로 구획에 들어가 복구 작업을 벌여야 했다. 방사능에 노출된 8명은 사고 후 1∼3주 만에 사망했다.

하지만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이 사고가 끝은 아니었다.

1969년 11월 15일 K-19는 바렌츠 해에서 잠행 중 미국의 핵잠수함 SSN-615 가토와 충돌했다. 함수의 음향시스템이 완전히 부서졌고 어뢰발사관의 커버도 찌그러져 버렸다. 다행히 긴급 부양으로 수면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사상자는 내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1972년 2월엔 화재가 발생해 승조원 28명이 생명을 잃는 최악의 사고까지 당했다.

이렇게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K-19는 1991년에야 퇴역했다.

이후 고철덩어리로 방치돼 있던 K-19는 2006년 해체를 앞두고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하츠의 구단주인 러시아 부호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에게 팔렸다.

한때 K-19 승조원으로 근무했던 로마노프는 이 폐잠수함을 전 세계 잠수함 근무 퇴역군인들을 위한 ‘만남의 장소’로 개조하겠다고 밝혔지만, K-19 생존자들은 이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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