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해피존]마구처럼 보였던 포크볼과 김광현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8월 22일 1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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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한국 야구팬들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선 노모 히데오를 보며 깜짝 놀랐다.

‘박찬호의 팀’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노모는 그 해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삼진1위에 오르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포크볼 앞에 메이저리그 슈퍼스타들의 방망이가 연신 허공을 갈랐다. 때마침 KBO리그에서도 정명원이 포크볼을 앞세워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포크볼은 마치 마구처럼 보였다.

정명원과 학창시절을 함께 보냈고 아마추어 때는 더 뛰어난 활약을 펼치기도 했던 OB 베어스 이광우는 1998년 큰 결심을 한다. 시즌을 마친 11월 이광우는 정형외과를 찾아가 오른쪽 검지와 중지 사이를 0.5㎝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프로야구 선수가 부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오롯이 새로운 공 포크볼을 던지기 위해 외과수술을 선택한 것이다.

당시 수술을 집도한 영동정형외과 양원찬 박사는 “살점을 조금 제거한 수술로 3주 후에는 정상적으로 공을 던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광우는 이후 실제로 포크볼을 구사했다. 비록 뛰어난 수준의 공은 아니라는 평가가 따랐지만 2000시즌 데뷔 12년 만에 처음으로 두 자리 수 승수(11승)를 올리기도 했다.

야구에서 새로운 변화구는 선수의 인생은 물론 리그의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메이저리그 진출 후 계속해서 새로운 구종을 추가하며 진화에 성공한 류현진(LA 다저스), 일본프로야구에서 슬로커브로 주무기 슬라이더의 가치를 높인 선동열 등 최고의 투수들도 새로운 공을 열망한다.


최근 KBO리그 담당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SK 와이번스 김광현의 스플리터를 주목하고 있다.

김광현은 그동안 뛰어난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갖고 있었지만 투 피치 투수로 분류돼 빅 리그 스타우트 담당자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처음 포스팅 자격을 획득한 2014시즌 미국 팀들이 좌완 불펜 투수로 분류한 이유다.

김광현은 역동적인 투구 폼의 특성상 체인지업을 구사하지 못한다. 포심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 147㎞도 미국에서 정상급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익스텐션(투구 때 발판에서 공을 끌고 나와 던지는 손끝까지 거리)이 길고 낮은 릴리스 포인트를 갖고 있다.

제3의 변화구만 장착하면 충분히 빅리그 무대에 도전해 볼 수 있다는 평가가 따른다.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점에 스카우트들의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공 끝 움직임이 좋은 김광현의 스플리터는 올 시즌 전체 투구 중 구사율이 14.3%에 이른다. 더 이상 김광현은 투 피치 투수가 아니다.

김광현은 이 공을 완성을 위해 4년간 노력해왔다. 투구 습관이 노출된다는 지적을 받았던 커브의 약점도 지우고 있다. 조금 돌아왔지만 김광현의 큰 꿈인 빅 리그 마운드는 스플리터와 함께 더 가까워지고 있다.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스트라이크존을 77개의 공으로 나눠 공략했다. 그 중 자신이 4할 이상 타율을 기록할 수 있는 코스의 공3.5개를 ‘해피 존’이라고 이름 지었다. 타자는 놓쳐서는 안 되는 반대로 투수는 절대로 피해야 할 해피 존은 인생의 축소판인 야구의 철학이 요약된 곳이다.

이경호 스포츠부 차장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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