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의사 왕성민 “성형환자 유치만으로 의료관광 한계… 정신과 치료도 유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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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모병원 국제진료센터 근무… 의료韓流 돕는 화교의사 왕성민씨

화교 의사 왕성민 씨(왼쪽)가 서울성모병원 국제진료센터를 찾은 중국인 환자와 상담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화교 의사 왕성민 씨(왼쪽)가 서울성모병원 국제진료센터를 찾은 중국인 환자와 상담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선생님, 밤마다 잠이 안 와서 너무 피곤해요.”

안면윤곽 성형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에 온 50대 중국인 중년 여성은 일주일 넘게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자신이 받을 성형수술 동영상을 보고 생긴 정신적 충격 때문이었다. 수술 날짜가 다가오자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수면제 처방도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서울 어디서도 불면증을 중국어로 상담할 수 있는 의사를 찾기 어려웠다. 왕 선생을 만나기 전까지는.

6월부터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국제진료센터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왕성민 씨는 이 병원에서 조금 특별한 존재다. 말끔한 외모뿐만 아니라 국내 의료계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화교 출신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는 대전에서 화교 3세로 태어났다. 중국집 주방장으로 일하던 그의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와 결혼해 그와 형제들을 낳았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수학, 과학에 뛰어난 재능을 뽐냈던 그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정성으로 왕 씨는 2000년 가톨릭대 의과대에 우수한 성적으로 진학할 수 있었다.

18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왕 씨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한때 심각하게 겪었던 ‘정체성의 위기’에 대해 말했다. 화교소학교 시절 늦잠을 자다가 등교시간을 놓친 일이 있었다. 택시에 급히 올라 학교 이름을 대는 그에게 택시운전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학교는 모른다. 중국인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우리 땅은 너희들 학교를 세울 만큼 넓지 않다.”

왕 씨는 자신뿐만 아니라 한국에 사는 화교 누구라도 비슷한 일을 겪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체성 위기를 겪던 주변 화교 친구 10명 중 3명은 원래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으로 갈아탈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왕 씨는 이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병원에서 인정받는 실력파 의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중국인과 한국인의 정체성 어느 한쪽도 부정하지 않는 유연한 자세를 성공 비결로 꼽았다. 여기엔 우리 사회의 소수자로서 성공하려는 남다른 열정도 한몫했다. 왕 씨는 “한국의 화교들은 공무원, 교사처럼 인기 많은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의료인의 전문성을 갖춰 내가 태어난 한국 사회에서 꼭 필요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공을 정신건강의학으로 정한 데도 이중적인 정체성이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학문인 정신의학을 공부하는 데 자신이 지닌 문화적 다양성이 크게 도움이 됐다는 말이다. 그는 순수 한국인과 비교할 때 자신 같은 다문화 청소년들이 다양성이라는 플러스알파를 가진 우리 사회의 소중한 인적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국제진료센터 의사로서 그는 앞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포함한 다양한 진료부문에서 더 많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성형수술 환자 유치만으로 한국 의료관광이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더 많은 외국인 환자를 받아들이려면 문화적 다양성과 외국어 실력을 갖춘 의료진이 현장에 많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중국인 여자 환자는 결국 어떻게 됐을까. 왕 씨는 “상담과 심리치료를 중국어로 사흘간 집중적으로 진행해 원하던 성형수술을 무사히 받고 귀국했다. 한국 병원이 ‘전하오’(眞好·정말 좋다)라고 했다”며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화교의사#의료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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