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사랑방’으로 놀러 오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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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이 과학관 커뮤니케이터가 선물한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했다. 이 관장은 “어린이 외에 노인도 찾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이 과학관 커뮤니케이터가 선물한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했다. 이 관장은 “어린이 외에 노인도 찾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과학관장에 취임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과학관 문을 닫는다’는 서류에 결재 도장을 찍는 일이었어요. 취임하자마자 관람객을 못 오게 한 관장이 됐습니다.”

이달 1일 경기 과천의 국립과천과학관에서 만난 이정모 관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 달 넘게 과학관의 문을 닫은 답답한 상황에서도 밝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관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지난달 24일 취임했다. 과천과학관이 설립된 이후 민간인이 관장에 오른 건 처음이다.

딱딱한 과학을 대중과 이어주는 과학커뮤니케이터 출신의 이 관장은 넥타이와 셔츠가 아닌 흰 반팔 라운드 티셔츠를 입고 인터뷰에 응했다. 티셔츠 가슴에는 ‘작은 발걸음, 큰 도약’이라는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미국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말이 적혀 있었다.

이 관장은 낙천적 성격과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독특한 외모, 특유의 친화력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동안 책과 방송, 강연, 그리고 많을 땐 사흘에 한 번꼴로 발표하던 칼럼을 통해 과학을 재기발랄하면서도 정확하게 전달해 인기를 얻었다. 2011년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시작으로 2016년 서울시립과학관 초대 관장을 맡으며 과학관장 경험을 쌓았다. 이 관장이 거쳐 간 과학관은 과학자와 과학 애호가, 실험을 좋아하는 청소년과 교사가 모이는 사랑방이 됐다.

국립과천과학관은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과학관이다. 하지만 한 해 279만 명이 찾은 이 대형 과학관도 지구촌을 휩쓴 바이러스의 위력에 기약 없는 휴관에 들어갔다.

이 관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돼 과학관을 찾지 못하는 관람객을 위해 ‘온라인 과학관’을 만드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과학관 소속 연구사들과 커뮤니케이터들이 직접 전시물을 찾아 설명하는 영상을 만들어 누구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볼 수 있도록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곤충 만화작가가 과학관 내에 마련된 곤충 관련 전시물 앞에 나서서 최근 기후변화로 일부 지역에 나타나는 유해 곤충 문제를 설명하는 식이다. 한날한시에 전국 각지에서 온라인으로 실험에 참여하는 이벤트도 논의하고 있다. 형식보다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더 많은 사람이 접하도록 배포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과학관의 연구 기능을 되살리는 계획도 세웠다.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과 영국 런던과학관은 전시와 행사, 교육이라는 역할 외에도 과학기술사에 필요한 생태, 복원, 사료 연구를 수행한다. 하지만 국내 과학관은 그동안 전시와 교육 중심으로만 운영되면서 반쪽짜리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 관장은 “과천과학관에는 20여 명의 과학교육가와 커뮤니케이터 외에 33명의 연구사가 있다”며 “이들이 전공별 전문가로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시민과 함께하는 본격적인 천문 관측부터 식물 탐사 등 다양한 활동도 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과학관은 어린이가 주로 찾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성인, 특히 노인들이 함께하는 과학관을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이 관장은 “노인들은 나라 발전에 공헌한 분들이고 경험 많고 교육 수준도 높으며 은퇴한 뒤 시간도 많다”며 “이분들이 지금은 갈 곳이 많지 않은데, 남은 인생 동안 시민으로서 과학을 향유하게 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실험 등 다양한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이 관장은 한국의 과학관은 시민을 위해 과학자와 과학교사가 같이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학관은 모두가 함께 만드는 공간이자 모두가 모이는 허브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국립과천과학관#온라인 과학관#코로나19#이정모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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