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조해진 “버려진 생명을 포함, 모든 생명은 귀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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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장편 ‘단순한 진심’ 펴낸 소설가 조해진

조해진 소설가는 “20, 30대 작가들의 재치, 유머, 일상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능력에 감탄한다. 한국 소설도 재미있으니 많이 봐 달라”며 웃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조해진 소설가는 “20, 30대 작가들의 재치, 유머, 일상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능력에 감탄한다. 한국 소설도 재미있으니 많이 봐 달라”며 웃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단편집 ‘빛의 호위’(2017년), 장편 ‘로기완을 만났다’(2011년)…. 소설가 조해진(43)의 작품은 어둠과 빛이 교차한다. 아픔을 파고들지만 페이지마다 따사로움이 묻어난다. 투명하고 세심한 연출 덕분이다. 다섯 번째 장편 ‘단순한 진심’(민음사·1만3000원)은 전작보다 한층 그윽해졌다. 입양아, 미혼모, 혼혈아, 기지촌 여성…. 겹겹의 아픔이 한없이 깊어서 그에 맞서려는 분투가 더 눈부시게 다가온다.》
 
서울 종로구 청계천변에서 12일 만난 그는 “역사 속에 버려진 생명을 포함해 모든 생명은 귀하다고 생각한다. 탄생과 죽음을 아우르는 생명에 바치는 헌사”라고 했다.

주인공은 나나. 프랑스로 입양돼 연극배우이자 극작가로 일하는 여성이다. 한국에서는 문주라고 불렸다. 부모에게 버려진 채 철로를 서성이던 그를 1년간 맡아 기른 기관사가 붙여준 이름이다.

양부모는 다정했지만 나나는 ‘문주’를 떨쳐내지 못한다. ‘문주로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가보지 못한 바깥의 삶을 반복해서 상상하고 원망하고 그리워한다. 단편집 ‘빛의 호위’에 실린 ‘문주’의 서사를 장편으로 다시 썼다.

“국가와 부모로부터 정체성을 강제로 소거당한 삶은 어떨까. 아픔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입양이라는 주제를 미뤄두고 있었어요.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인) 제인 정 트렌카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 ‘피의 언어’를 읽고서 비로소 첫 문장이 나왔습니다.”

집필은 쉽지 않았다. 문주의 외로움에 짓눌려 문장이 감정에 휘둘렸다. 거리를 둬야겠다 싶어 인물들에게 무대와 관련 있는 직업을 줬다. 포기하고 싶을 땐 삶에서 한 발짝 떨어져 견디길 바랐다.

장편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복희의 비중이 커졌다. 젊은 시절 기지촌 여성들을 보살피고 대안가족까지 꾸린 인물이다.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을 찾은 나나를 보면서 복희는 수년간 맡아 키우다 입양 보낸 누군가를 떠올린다. 작가는 “미혼모에 대해 유난히 차별적인 시선이 한국의 입양률을 높인 측면이 있다. 그래서 기지촌이라는 세계를 새롭게 보탰다”고 했다.

등장인물들은 완벽한 타인임에도 기꺼이 서로의 삶에 손을 내민다. 복희는 나나가 먹고 싶다던 수수부꾸미를 내놓고, 나나는 의식을 잃은 복희의 곁을 지킨다. 문경은 먼 옛날 아버지가 돌봤던 나나를 힘껏 껴안는다. “하나의 생명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태도다.

“한순간이나마 나를 감싼 빛은 언젠가 다른 이에게 전해진다고 생각해요. 등단 초기에는 삶을 긍정하는 태도가 쉬운 건줄 알았는데 이젠 반대예요. 절망은 차라리 쉽고, 희망과 낙관은 가시밭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소설은 늘 이방을 배경으로 하거나 이방인이 등장한다. 인물들 간 물리적 거리는 멀다. ‘로기완…’은 아예 접촉이 없었고 장편 ‘여름을 지나가다’(2015년)에서는 이따금씩 스쳤다. 이번 작품에서는 서로가 깊이 연결된다. 비슷한 공간보다 먼 풍경 속 인물들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이 경외감을 안겨서 선호한다고 했다.

등단한 지 올해로 14년. 줄곧 단순히 건네는 진심, 빛처럼 따듯한 호위 같은 글을 써왔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해선 안 된다는 수전 손태그와 자신이 겪은 고통을 세상에 알린 프리모 레비의 책을 자주 읽는다.

“누구나 언제든 이방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혼모, 장애인, 동성애자는 남이 아닌 우리인 거죠. 제 소설이 조금이나마 생명을 환대하는 태도를 상기시킨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소설가 조해진#단순한 진심#빛의 호위#로기완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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