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눈물, 한국인은 모르는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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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타다-멘붕-버카충’ 신조어에 ‘시망’ 비속어까지
9일 한글날… 成大 유학생 ‘한글 대담’

한글날(9일)을 앞두고 성균관대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이 3일 서울 성균관대 명륜당 앞에 모여 ‘한국어 파괴 현상’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이상한 신조어 사용 등으로 아름다운 한국어가 파괴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한글날(9일)을 앞두고 성균관대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이 3일 서울 성균관대 명륜당 앞에 모여 ‘한국어 파괴 현상’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이상한 신조어 사용 등으로 아름다운 한국어가 파괴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학교 친구들에게서 들은 ‘시망’이라는 단어를 ‘시험 망했다’는 뜻인 줄 알고 사용했다가 선배로부터 혼난 적이 있어요. 알고 보니 ‘시× 망했다’는 뜻이더라고요. 한국어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런 줄임말을 가려 쓰기 정말 힘듭니다.”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아몽 마틴 씨(24)가 말을 마치자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다”며 맞장구를 쳤다.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른 이들은 600년 전통의 성균관대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성대생들이다.

본보와 성균관대는 한글날(9일)을 앞둔 3일, 교내 600주년 기념관에서 ‘외국인 학생들이 보는 한국어파괴현상’을 주제로 대담을 마련했다. 코트디부아르 콜롬비아 미국 일본 중국 이스라엘 대만 싱가포르 등 세계 각지에서 모인 8명의 외국인 학생들은 국어에 대한 한국인들의 애정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2시간여 이어진 대담은 한국어로 진행됐다.

○ 신조어 사용이 한국어 파괴 가속화

대담에 참여한 외국인 학생들은 “킹(King) 세종이 슬퍼할 일을 더이상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글의 창제자인 세종대왕이 슬퍼할 정도로 한국어 파괴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국어 기념일(한글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파괴가 문제가 되는 건 선뜻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들은 PC·스마트폰으로 인해 인터넷 용어, 신조어 사용이 늘면서 한국어 파괴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모인 외국인 학생들은 ‘썸타다’(영어 ‘something’의 변형 한글 표기와 우리말 동사 ‘타다’가 합쳐진 신조어로 호감 가는 상대와 정식 교제에 앞서 핑크빛 감정을 주고받는 행위를 뜻함)와 ‘멘붕(멘털 붕괴)’ 등 최근 국내에서 유행하는 신조어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진행자로 대담에 참여한 한국인 김다솔 씨(24·여)가 “‘버카충’이 ‘버스카드충전’의 줄임말”이라고 설명하자 다들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몽 씨는 “신조어의 경우 대개 비속어가 많아 문제”라고 지적했다.

6일 독서·논술교육업체인 한우리독서토론논술이 학부모 4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중학생 학부모의 47.6%, 고등학생 학부모의 53.8%가 “PC·모바일로 인해 자녀가 잘못된 언어를 사용하게 됐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기기 활용에 따른 한국어 파괴가 단순히 외국인들의 ‘기우’가 아닌 실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 “언어는 언어일 뿐, 멋 부리는 패션 아냐”

외국인 학생들은 잦은 외국어 사용도 한국어 파괴 현상의 원인으로 꼽았다. 실제로 성균관대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인의 국어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유’를 묻자 응답자의 46.9%가 ‘습관처럼 외국어를 섞어 쓰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중국인 류양 씨(25)는 “언어의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지만 그 와중에도 중국은 스마트폰을 ‘즈넝서우지(智能手机)’라고 하는 등 고유의 표현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몽 씨는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라고 표현하는 북한의 자세가 차라리 나은 것 같다”며 “언어는 (소통의 도구인) 언어일 뿐, 멋을 부리는 패션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이스라엘인 마얀 마수드 씨(29·여)는 “세계화 과정에서도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 쓰기를 고수하고 있다”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언어일수록 이를 지키려는 노력이 몇 배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세종#한글날#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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