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동맹은 없다”[횡설수설/우경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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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세계보건기구(WHO)는 멕시코에서 시작된 신종인플루엔자A(H1N1)에 대해 경보단계 최고 등급인 ‘대유행(Pandemic)’을 선언했다. 1년 2개월이 지나 WHO가 대유행 종식을 선언하기까지 214개국을 휩쓸고 1만8449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렇듯 막강한 전염력을 가진 신종플루가 종식된 건 백신 덕분이었다. 그해 9월 신종플루 백신 대량 생산에 성공한 호주가 대대적인 예방접종을 처음 시작했고 미국, 유럽, 일본, 한국이 뒤를 이었다.

▷당시 미국이 호주에 신종플루 백신 3500만 도스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던 사실이 공개됐다. 피터 나바로 미국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이 23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이런 (감염병) 위기 때에는 동맹이 없다”며 “신종플루 사태 당시 우방인 호주, 영국, 캐나다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건 사적 관계에서는 미덕일지라도 공적 관계, 더욱이 냉혹한 국제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마스크를 놓고도 미중 간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나바로 국장은 “시급한 문제는 N95 마스크”라며 “중국이 마스크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고 있고 중국 내 미국 마스크 공장을 국유화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치료에 필요한 물품뿐 아니라 필수 의약품까지 공급망을 해외로 지나치게 많이 이전했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중국의 우방인 북한, 러시아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국경을 닫아버렸다. 우리 정부는 중국에 마스크 보내기 운동을 지원하며 위로했고,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막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확진자가 급증하자 중국에서는 한국을 한심하게 여기는 듯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관영매체 환추(環球)시보는 사설에서 “한국, 일본, 이란, 이탈리아의 방역 통제 조치가 부족하다”고 훈수를 뒀다. 한국의 방역이 후베이(湖北)성 외에 다른 중국 성(省) 가운데 감염 상황이 중간 정도인 곳의 방역 조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중국 공항들은 한국으로부터의 바이러스 ‘역(逆)유입’을 우려한다고 하고, 주한 중국대사관은 중국인 유학생에게 한국 입국 연기를 권고했다.

▷국제사회가 국익이 달린 치열한 전쟁터라는 점에서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 등 당청에서 쏟아지는 발언들이 너무 안이하게 들린다. 친한 친구라면 병문안도 가고, 병원비도 보태는 것이 선(善)한 행위이다. 하지만 국가 대 국가의 관계는 다른 가치가 앞선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절대 선(善)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who#코로나19#팬데믹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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