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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성류굴서 신라 ‘진흥왕’ 관련 국보급 명문 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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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성류굴서 신라 ‘진흥왕’ 관련 국보급 명문 판독

뉴시스입력 2019-05-23 11:32수정 2019-05-2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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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흥왕, 울진 성류굴 행차 확인

경북 울진군은 최근 울진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 내부 제8광장에서 발견돼 보고된 다수의 신라시대 명문 중 진흥왕이 560년 6월에 성류굴을 다녀간 기록을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

신라 제24대 진흥왕은 북한산, 마운령과 황초령에 순수비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새롭게 확인된 명문(심현용 박사, 이용현 박사 공동판독)은 “庚辰六月日(경진육월일)/ 柵作?父飽(책작익부포)/ 女二交右伸(여이교우신)/ 眞興(진흥)/ 王?(왕거)/ 世益者五十人(세익자오십인)”으로, 이는 “경진년(560, 진흥왕 21) 6월 일, 잔교(棧橋 = 柵)를 만들고, 뱃사공[?父]을 배불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진흥왕이 다녀가셨다(행차하셨다). 세상에 도움이 된 이(보좌한 이)가 50인이었다.”로 해석된다.

이를 통해 경진년, 즉 560년(신라 진흥왕 21) 6월에 진흥왕이 이곳 울진 성류굴에 행차해 다녀간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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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의 이동에는 선박이 활용됐고, 행차에는 50인이 보좌했으며 행차와 관련 동굴 내부를 잇는 잔교가 설치되었음도 알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삼국사기를 비롯 기존 문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신라사를 새롭게 구성하고 울진 성류굴의 역사적 위상을 밝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심현용 박사(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 학예연구사)는 “향후 울진지역에서 진흥왕 순수비가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며 “울진 성류굴의 신라 명문들은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에 버금가는 신라 금석문의 보고로 한권의 역사책이 새로 발견된 것과 같은 충격적인 사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명문을 통해 울진 성류굴은 신라 화랑뿐만 아니라 진흥왕까지 다녀갈 정도로 유명하고 신성한 명승지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화랑 수련장소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울진 성류굴 내부 각석문은 지난 3월21일 발견(발견자 : 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 학예연구사 심현용 박사, 한국동굴연구소 이종희 조사연구실장)된 이래 4월11일 최초 보도됐고 4월20일 학계에 발표(심현용, 「울진 성류굴 제8광장 신라 각석문 발견보고」, 한국목간학회)된 바 있다.

이때 ‘경진’이란 기년을 비롯해 일부 판독이 이뤄졌지만, ‘진흥왕’을 확정짓지는 못했다.

이후 울진군은 조사를 지속해 각석문을 정밀촬영(오세윤 문화재전문 사진작가)하고, 심현용(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 학예연구사) 박사와 이용현(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박사의 공동 조사와 판독을 통해 ‘眞興王(진흥왕)’등 모두 25자의 명문을 확인했다.

이 경진년 진흥왕 명문은 성류굴 제8광장(경북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 산 32-2번지) 1지굴의 큰 석주에 위치하며, 지표에서 약 230㎝ 높이에 가로 35㎝, 세로 40㎝ 정도의 굴곡진 석주면에 우서(右書, 글자중심)로 음각돼 있다.

명문은 세로 6행으로 1행에 5자, 2행 5자, 3행 5자, 4행 2자, 5행 2자, 6행 6자로 모두 25자가 새겨졌으며, 글자 크기는 가로 7~8㎝, 세로 7~12㎝ 정도인데, ‘眞興王?(진흥왕거)’의 4자는 다른 자보다 크게 써 강조했다. 글자는 예서의 분위기가 남아있는 해서체다.

울진군은 지난 22일 노중국(계명대 명예교수), 주보돈(경북대 명예교수), 장원섭(경민대 교수), 이영호(경북대 교수), 이용현(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등 관련 학계의 권위자를 모시고 향후 전수조사 및 보존대책과 활용에 대한 현장 자문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성류굴 각석문들의 현황을 살펴본 노중국?주보돈 등 5명의 자문위원들은 “동굴 안에서 신라 명문들이 발견된 것은 우리나라 최초로 당시 성류굴은 신라의 명승지로서 삼국시대부터 화랑들의 수련장소였음이 처음으로 밝혀졌다”며 “화랑들이 동굴에서 수련하고 남긴 명문들은 신라의 정치사, 화랑도, 불교사, 군제사, 인명사 등의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지금까지 발견된 명문만으로도 국보급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어 “동굴에 대한 전수조사가 시급하며 그 중요도와 난이도로 보아 문화재청이나 국립문화재연구소 등 전문기관에서 직접 조사해야 할 상황으로 국가기관의 전담조사를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신라 삼국통일을 전공한 장원섭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명문 가운데 특히 화랑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성류굴이 화랑의 수련장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 신라의 삼국통일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는 매우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성류굴 경진년명의 학술적 사료적 가치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첫째, 성류굴을 방문한 시기와 사람이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경진 6월’은 뒤의 방문자가 진흥왕으로 나오므로 그의 재임기간(540~576) 중 경진년은 진흥왕 21년 서기 560년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560년 6월에 신라 진흥왕이 울진을 행차하고 남긴 기록임을 알 수 있다.

둘째, 진흥왕의 호칭은 기존 확인된 568년의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에 ‘진흥태왕(眞興太王)’으로 나타나는데, 이 경진년명에서는 ‘진흥왕(眞興王)’으로 기록하고 있어 시기 및 정치적 상황에 의한 왕호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라 하겠다.

셋째, 중국 사서인 북제서 권7 제기7 무성 하청 4년 2월 갑인조에 “신라국왕 김진흥(金眞興)을 사지절 동이교위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삼았다.”로 기록되어 있는데 무성제 하청 4년은 신라 진흥왕 26년에 해당돼 서기 565년이 된다. 이 북제서로 인해 진흥왕이 살아있을 때의 이름으로 밝혀졌으며, 이번 판독된 경진년명은 이 문헌기록보다 5년 더 빠른 1차 사료인 금석문으로 그 가치가 높으며, 또한 북제서의 기록을 입증한다 하겠다.

넷째, 특히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진흥왕조에는 진흥왕 20년(559)~22년(561)의 기록이 비워있어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이번 명문 판독으로 인해 이를 메워줄 획기적 사료로 그 가치가 높다 하겠다.

전찬걸 울진군수는 “진흥왕이 560년 울진 성류굴을 다녀갔다는 명문이 발견됐다는 이는 지난 1988년 울진 봉평리 신라비(국보 제242호)의 발견을 이어 다시 한 번 더 신라사 연구의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울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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