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로마에서 왔다고? 10만 군중 여의도로 몰려가 “만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0일 1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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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0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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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온다!”, “만세! 만세!”

음력으로 부처님오신날인 1920년 5월 25일 오후 경성 여의도 일대는 수만 군중이 일제히 내지르는 “만세” 소리로 뒤덮였습니다. 3·1 독립만세운동 이후 이처럼 많은 사람이 모여 만세를 부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비록 태극기를 들진 않았지만, 또 독립만세도 아니었지만 기 한번 못 펴고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조선 민중의 응어리가 조금이나마 풀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을까요?

1920년 이탈리아 조종사들이 타고 온 ‘스파’식 복엽 비행기. 최대 출력 230마력에 시속 250㎞에 이르는 당시 최신식 기종이었다.
1920년 이탈리아 조종사들이 타고 온 ‘스파’식 복엽 비행기. 최대 출력 230마력에 시속 250㎞에 이르는 당시 최신식 기종이었다.


이로부터 100여 일 전인 2월 1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13명의 조종사가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일본 도쿄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기나긴 모험을 시작합니다. 1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와 일본 두 나라가 우호를 다진다는 명분으로 기획한 이벤트였죠. 하지만 악천후와 기체 고장은 다반사였고, 조종사가 병에 걸리거나 심지어 추락해 죽는 등 비행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페라린과 마시에로 두 중위는 최신식 ‘스파(SVA)’ 기종을 몰고 그리스 테살로니키, 이라크 바스라, 인도 콜카타, 태국 방콕, 베트남 하노이를 경유해 중국의 광둥, 푸저우, 상하이, 칭다오를 거쳐 5월 17일 베이징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의 여정을 ‘라마동경간대비행(羅馬東京間大飛行)’이란 제목으로 추적 보도한 동아일보는 페라린 중위가 신의주에 도착한 5월 23일 호외를 발행했고, 두 중위가 25일 경성에 안착하자 다음날 제3면의 대부분을 할애해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이 가운데 ‘10여 만의 군중이 하늘을 쳐다보며 공중의 용사를 기다렸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1919년 말 경성 인구가 24만8644명이었으니 기사대로라면 10명 중 4명꼴로 여의도로 몰려든 셈입니다. 그만큼 장안의 화제였습니다.

1920년 5월 13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페라린 중위와 ‘스파’식 비행기. 사진을 쓰지 않고 인물과 사물의 특징을 살린 캐리커쳐로 표현해 이채롭다.
1920년 5월 13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페라린 중위와 ‘스파’식 비행기. 사진을 쓰지 않고 인물과 사물의 특징을 살린 캐리커쳐로 표현해 이채롭다.


이탈리아 조종사들의 모험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일대 사건’이었을 뿐 아니라 일제의 압박에 억눌려 신음하던 조선인에게 용기와 도전정신을 북돋울 수 있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동아일보는 두 중위가 비행 중에 아라비아인들의 기관총 사격을 받은 일, 토인에게 붙잡혔지만 기지를 발휘해 탈출한 일 등 숱한 역경을 극복한 모험담을 5월 12일자에 소개했습니다. 26일자 보도에서는 이들을 ‘용맹하고 장쾌한 하늘의 정복자’, ‘기골도 당당한 장부’, ‘피와 생명으로 조국을 회복했고,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이탈리아인’이라고 추켜세웠습니다.

당시 비행기 조종사는 대부분 군인이었습니다. 페라린도 시인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와 함께 오스트리아 비엔나 공격에 나서 화려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죠. 그러니 비행기는 곧 공군을 상징했고, 일제 치하의 조선에선 비행기를 갖고 조종사를 양성해 무력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꿈을 꾸게 된 겁니다. 1920년대 노백린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총장 등이 캘리포니아에 한인 비행학교를 설립한 것이나 서왈보, 안창남, 권기옥 등 비행사들이 독립운동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이탈리아 조종사의 모험을 집중 보도해 ‘비행기로 민심을 격발’한 동아일보는 1922년 12월 안창남의 고국방문 비행을 주최하기에 이릅니다.

1920년 5월 30일 조선에서의 마지막 기착지인 대구를 떠나 일본으로 향하는 마시에로 중위.
1920년 5월 30일 조선에서의 마지막 기착지인 대구를 떠나 일본으로 향하는 마시에로 중위.


경성의 유지들은 5월 27일 오후 7시 조선호텔에서 페라린과 마시에로를 환영하는 연회를 베풀기로 했는데 이때 작은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됐는데도 주인공들이 나타나지 않은 겁니다. 이유인 즉 이날 오후 5시 반경부터 경성 일대에 직경 2㎝가 넘는 우박이 반시간 동안이나 쏟아지는 기상이변이 일어나자 두 중위는 부랴부랴 애기(愛機)를 살피러 여의도로 달려갔던 것이었죠. 다행히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두 이탈리아 비행사는 서둘러 연회에 참석했고, 다음날 경성을 출발해 대구, 오사카를 거쳐 31일 최종 목적지인 도쿄에 내려 대장정을 마쳤습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과거 기사의 원문과 현대문은 '동아플래시100' 사이트(https://www.donga.com/news/donga100)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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