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의 산실… 고교야구 황금기 이끈 ‘황금사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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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역사… 고교야구 최고 권위

1980년 10월 3일 제34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결승전을 찾은 팬들이 서울운동장 매표소 앞을 가득 채웠다. 2학년 듀오 김건우-박노준을 앞세운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는 이날 세광고를 10-3으로 물리쳤고 다음 날 결승전에서 광주일고에 5-3 승리를 거두면서 우승기를 차지했다. 동아일보DB
1980년 10월 3일 제34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결승전을 찾은 팬들이 서울운동장 매표소 앞을 가득 채웠다. 2학년 듀오 김건우-박노준을 앞세운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는 이날 세광고를 10-3으로 물리쳤고 다음 날 결승전에서 광주일고에 5-3 승리를 거두면서 우승기를 차지했다. 동아일보DB
“요즘 전대미문의 가공할 광고 탄압으로 허덕이면서도 동아마라톤을 예정대로 개최했고 전국일주 사이클의 행렬은 어김없이 전국의 주요 도로를 누빌 것이다.”

동아일보는 ‘백지 광고 사태’가 한창이던 1975년 4월 1일 ‘우리의 사업 정신은 곧 스포츠맨십’이라면서 이렇게 자신감을 드러냈다. 유신 독재 정권의 압박으로 광고가 모두 끊겨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동아일보가 소위 비인기 종목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덕분이었다.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황금사자기는 1947년 ‘제1회 전국중학지구별 초청 야구대회’라는 이름으로 막을 올렸다.(당시 학제로는 현재 고교를 중등학교라고 불렀다.) 초반에는 적자를 면치 못하던 대회였지만 1960년대부터 고교야구 황금기가 열리면서 황금사자기는 ‘황금 알을 낳는 대회’가 됐다. 이에 동아일보는 6·25전쟁 등으로 열지 못했던 여자 정구(소프트테니스), 수영 대회 등을 부활시키고 사이클, 여자 테니스 대회를 새로 개최하는 등 비인기 종목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황금사자기는 1949년 제3회 대회부터 개인상 제도를 도입했다. 수상자들의 면면만 봐도 한국야구의 역사가 한눈에 보인다. 1972년 대회에서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를 탄생시킨 김준환, 1973년 대구상고를 정상에 올린 고 장효조, 1980년 우승한 선린상고의 박노준,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대회에서 세광고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끈 송진우, 1984년 광주일고를 정상에 올린 이강철, 1996년부터 신일고의 2연패에 앞장선 봉중근 등 많은 선수가 황금사자기를 통해 자질을 인정받았다. 1980년 대회에서 감투상을 받은 ‘국보 투수’ 선동열도 그중 한 명이다.

황금사자기는 현재까지도 단일 언론사에서 주최하는 제일 역사가 긴 국내 고교야구대회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21세기 들어 고교야구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황금사자기가 도전과 혁신을 멈춘 건 아니다. 2018년 황금사자기는 투수 1명이 하루에 투구 수 105개를 넘기지 못하도록 한 첫 번째 고교야구 대회이자 자동 고의사구 제도를 도입한 첫 대회이기도 하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고교야구#황금사자기#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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