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일본어 강제하는 악한 정치, 당장 때려치우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5일 15시 30분


코멘트

1920년 4월 13일

플래시백


‘보통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어린 마음에 몹시 이상하게 느껴진 것은 일본말을 ’우리나라 말‘, 일본을 ’우리나라‘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생전의 조용만 고려대 명예교수가 ‘경성야화’에서 밝힌 어린 시절 얘기입니다. 1918년 보통학교에 들어가니 ‘와카쿠니(我國)’는 일본, ‘고쿠고(國語)’는 일본말이라고 배웠다는 것이죠. 하도 이상해 아버지에게 여쭤보니까 “나라가 망해 그렇게 됐다”라고만 하셨답니다.

1920년 4월 11~13일 상 중 하 3회에 걸쳐 1면에 실은 ‘조선인의 교육용어를 일본어로 강제함을 폐지하라’ 사설은 일제의 일본어 강제교육을 정면으로 논박했습니다. 일제가 1911년 8월 ‘조선교육령’을 공포한 뒤 빚어진 교육 현장의 문제를 다룬 것이죠. 교육령의 핵심은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든다’였습니다. 그것도 천황에 충성하고 말 잘 듣는 ‘충량한’ 일본인으로 만드는 것이었죠. 바로 동화정책입니다.

일제는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보통학교 전 과목 교과서를 일본어로 만들었습니다. 한 과목으로 합친 조선어·한문만 빼고요. 일본어 시간도 조선어·한문 시간보다 2배 정도 더 늘렸죠. 일본어 독본에는 일본 역사와 지리 전설 등을 담았습니다. 철부지들이 입학해 제일 먼저 한 일이 제복 입고 칼 찬 교사 앞에서 잔뜩 긴장한 채 자기 이름을 일본어로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일제는 이후 사립학교규칙과 서당규칙을 제정해 민족교육이 숨쉴 틈을 틀어막았죠.

3·1운동으로 우리 민족이 살아있음을 알린 만큼 일본어 강제교육 철폐는 당연한 요구가 됐습니다. 사설은 이를 공개 천명했던 것이죠. 상편은 총독을 ‘현대정치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군인’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때까지 부임한 총독 3명이 육군이나 해군 대장이었던 점을 비꼬았죠. 이어 언론과 집회결사, 출판서신, 종교에 대한 압박과 침해 등은 견디라고 하면 견디겠지만 일본어를 억지로 배워야 하는 폐해와 고통은 절대 참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사설은 논리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본어 강제교육의 문제를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 먼저 조선인의 능력을 갉아먹는 해악입니다. 모국어를 배울 때도 온힘을 다해 엄마의 입 모양을 따라하는 것으로 시작하죠. 그런데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다른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여기에 학생들은 다른 과목도 공부해야 해서 이중의 고통이 따릅니다.

중편은 조선인의 독특한 문화를 파괴하는 두 번째 폐해를 다룹니다. 어느 나라나 도덕과 문화는 언어에 의해 발전하고 언어는 역사와 도덕 습관 풍속 문화에 의지해 발달합니다. 자기 언어를 못 쓰게 하면 문화와 민족의 발달은 물론 인류 진보까지 가로막게 됩니다. 봉준호 감독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는 말과도 맥이 닿는 논리입니다.

하편은 일본어 강제교육이 일본인에게도 백해무익하다는 점을 밝힙니다. 조선인을 전부 죽여 없애버리면 모를까 일본어 강제교육으로 기나긴 역사를 살아온 조선인의 민족성과 조선어를 박멸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도리어 민족성을 더 굳게 하고 독립 열기를 뜨겁게 할 뿐이어서 동화정책은 절대로,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합니다.

재미있는 대목은 조선시대 고전수필 ‘조침문(弔針文)’처럼 동화정책을 의인화해 꾸짖는 부분입니다. ‘동화정책아, 네 죄가 어떻게 가볍다 하며 또 네 죄가 어떻게 조선인에게만 미쳤다고 하겠느냐. 너는 조선인에게도 죄인이 되는 동시에 일본인에게도 큰 죄인이 되는구나. 너는 실로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를 갈라놓는 놈이니 너는 동화정책이 아니라 동화(同禍)정책이로구나.’

동화정책을 실시했다가 쓰라린 실패를 맛봤던 다른 나라 사례는 일제를 향해 던지는 반면교사였습니다.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 등 동화정책에 성공한 나라가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을 봐서라도 하루라도 빨리 일본어 강제교육을 폐지하라고 거듭 촉구하면서 사설은 마무리됩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과거 기사의 원문과 현대문은 '동아플래시100' 사이트(https://www.donga.com/news/donga100)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