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매질 없앴다지만… 대신 ‘인간 콩나물 시루’ 감옥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8일 15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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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4월 1일


플래시백
1920년 4월 1일자 3면 머리기사의 제목은 ‘태형(笞刑)을 근폐(僅廢)’입니다. 근(僅)은 ‘겨우’ 또는 ‘간신히’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제목은 ‘태형이 간신히 없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죄인을 매질해 다스리는 야만적인 형벌을 벌써부터 없애라는 목소리가 높았는데도 이제야 겨우 없앴다는 불만이 담겨있는 제목이죠. 요즘은 동물도 함부로 때리지 못하는 세상이지만 100년 전의 일제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법으로 정해놓고 때렸습니다.

태형은 동아일보 창간일의 하루 전날인 1920년 3월 31일이 마지막 시행일이었습니다. 일제 총독부가 태형령을 폐지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사라진 것이죠. 태형령의 공식명칭은 ‘조선태형령’으로 1912년 3월부터 시행됐습니다. 죄인을 십자가 모양의 형틀에 엎드리게 한 뒤 양팔을 벌리게 해 묶고 두 다리도 묶습니다. 이어 죄인의 바지를 내려 엉덩이 맨살을 드러낸 다음 대나무 묶음 회초리로 때렸습니다. 비명을 지를까봐 물에 적신 헝겊으로 죄인의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일본에서는 자유민권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무렵인 1882년에 태형을 전근대적이라며 폐지했습니다. 그런데 일제는 한반도에서 그것도 일본인 등 외국인을 제외하고 조선인들만을 대상으로 ‘매질 형벌’을 계속 시행했습니다. 겉으로는 조선인이나 일본인이나 같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조선인의 민도가 낮다는 이유로 매질을 해댄 것이었죠. 이때 일제는 ‘조선 사람과 명태는 두들겨 패야 한다’는 말을 앞세웠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 전체를 열등한 민족으로 낙인찍고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알게 모르게 받아들이도록 했던 것입니다.

태형은 집행하는 쪽에서는 효과가 바로 나타나고 간단한데다 감옥에 보낼 필요가 없어 비용도 들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맞는 쪽에서는 속으로 굴욕감을 느끼고 몸에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 상처가 남았습니다. 태형은 30대가 보통이었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많이 맞거나 모질게 맞아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도 꽤 있었습니다. ‘감옥 또는 즉결관서에서 비밀리에 행한다’는 규정으로 창피를 덜 당해 그나마 위안이 됐을까요?

매질도 무섭지만 태형을 결정하는 과정은 ‘엿장수 마음대로’였습니다. 헌병이나 경찰이 재판 없이 즉결처분으로 태형을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3개월 이하 징역이나 구류형, 또는 100원 이하 벌금이나 과료를 받을 죄라면 태형으로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조선인에게는 칼 찬 헌병이나 순사가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떼쓰는 아이에게 “순사 온다”라고 겁을 준 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그럼 태형이 없어졌으니 죄인들이 받는 형벌은 한결 나아질까요? ‘태형을 근폐’ 기사는 바로 이 점을 짚었습니다. 미즈노 렌타로 정무총감이 “감옥과 간수를 많이 늘려서 태형 대신 구금을 시키겠다”고 말한 내용을 검증한 것이죠. 먼저 3년 평균 태형 대수를 260만8992대로 계산했습니다. 태형 1대는 감옥 하루와 같으니까 태형 폐지로 이 대수의 날짜만큼 죄인이 감옥에 더 갇혀있게 됩니다. 여기서 감옥 대신 유치장에 머무는 단기 수형자 등을 뺀 뒤 이를 365일로 나누면 하루 평균 8607명이 감옥에 더 가야 하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1920년에 이미 감옥은 만원이었습니다. 대만 등에서는 감방 1평(3.3㎥)에 평균 1명이 생활하지만 조선에서는 평균 2명이 기준이었습니다. 실제로는 1평에 평균 4명 이상을 집어넣었고 여기에 태형 폐지로 8607명이 추가되면 감방은 ‘인간 콩나물시루’로 바뀔 것이 분명했죠. 범죄 유형이나 죄인 성격 등을 따져 1평에 8, 9명을 집어넣는 일도 흔했습니다. 죄인들은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자거나 심지어는 서서 잘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총독부는 감옥을 늘린다고 했지만 돈이 모자라 함석지붕에 철조망을 둘러친 엉성한 곳도 많았습니다. 갇힌 사람들의 고통은 무슨 말로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과거 기사의 원문과 현대문은 '동아플래시100' 사이트(https://www.donga.com/news/donga100)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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