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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7번의 패배가 로마의 운명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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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7번의 패배가 로마의 운명을 바꿨다

김민 기자 입력 2019-11-23 03:00수정 2019-11-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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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약탈과 패배로 쓴 역사/매슈 닐 지음·박진서 옮김/688쪽·2만8000원·마티
지하의 검투사와 동물이 곧장 등장하는 무대 장치와, 때로는 물을 채워 수상전까지 벌였던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건축 기술은 지금 봐도 놀랍다. 그러나 이곳에서 벌어진 유혈이 낭자한 전투와 도박은 로마 제국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동아일보DB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을 보고 위대한 성취, 제국의 영광만을 느낀다면 그 눈은 반쪽짜리에 그칠지도 모른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살생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장소다. 경기장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이 25만∼50만 명에 이르며, 동물도 수백만 마리가 죽었다. 경기장에서 멸종된 동물도 있다.

로마인들은 이 원형 경기장에 가는 것을 통과의례이자 가족 나들이로 여겼다. 거부감이 큰 사람도 일단 가면 ‘스릴’에 중독됐다. 검투사가 상대를 찔러 피가 솟구치면 내기에서 이긴 관중들의 환호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전쟁에서의 승리와 강한 자가 왕이 되는 과정, 그간 로마 역사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여겨진 것들이다. 기존 역사 서술이 로마 제국이 유럽 대륙에서 얼마나 멀리 뻗어나갔는지를 관찰했다면, 이 책은 로마에 시선을 고정한다. 그리고 3000년 역사 속에서 이 도시가 침략당하고 패배한 7번의 순간을 조명한다.



‘폭력을 겪을 때 진실이 드러난다’는 말처럼, 패배의 순간 앞에 로마의 민낯이 드러난다. 강인한 로마는 기원전 387년 갈리아인에게 당한 처절한 침략에서 시작됐다. 말과 전차를 타고 끔찍한 살육을 저지르는 갈리아인의 모습에 당시 로마인들은 도망치기 바빴다. 모든 것을 빼앗긴 트라우마를 겪은 로마는 무방비 상태였던 성벽을 세우고 군대를 보강하며 ‘합리성’을 모색해갔다. 그러나 408년 서고트인, 537년 동고트인의 침략은 희생자의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끔찍한 참상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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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와 다섯 번째 침략은 로마의 교황과 황제의 권력 다툼에서 일어났다. 1084년 노르만군이 성벽을 뚫고 4일 만에 도시 곳곳을 불바다로 만들고, 1527년에는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 황제가 클레멘스 7세 교황을 공격하려 로마를 침략한다. 에스파냐군과 독일 용병 1만 군이 쇄도해 무자비한 학살과 약탈을 일삼아 “로마에 비하면 지옥도 아름답다”는 기록이 남았다고 한다.

서고트인의 로마 약탈을 그린 조제프-노엘 실베스트르의 1890년작. ‘410년 야만족의 로마 약탈’. 마티 제공
마지막 두 번의 침략은 교황을 지지하는 루이 나폴레옹 프랑스 대군의 침략(1849년)과 독일 나치군의 침략(1943년)이다. 당시 이탈리아가 연합군과 휴전 협정을 맺고 무솔리니를 체포하자, 독일군이 전선에서 철군해 우방의 수도인 로마를 점령했던 사건이다. 독일군은 로마 유대인과 파르티잔 활동에 대한 보복성 학살을 자행했다. 그러나 이 기간 평범한 많은 로마 시민들은 파시스트 정부나 나치군, 연합군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은 채 굶주림과 공포 속에서도 유대인을 숨겨주는 등 점령군에 대항했다.

영국인인 저자는 도시에 겹겹이 쌓인 역사의 흔적에 매료돼 16년째 로마에 살고 있다. 기나긴 도시의 역사를 흥미롭게 다룰 방법을 고민하다 ‘패배’에 집중했다. 일상에서 결정적 순간을 읽어내는 문학적 통찰도 책 곳곳에서 발견된다. 저자의 소설 ‘English Passengers(2000년·국내 미출간)’도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꾸준히 소설을 발표한 문학가이기도 하다. 다만 40페이지가 넘는 출처와 참고문헌이 보여주듯, 이 책은 기본적으로 사료에 바탕을 둔 역사서다.

저자는 마지막에서야 “여전히 로마 곳곳에 파시즘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고 꼬집는다. 그러나 ‘테러 위협에 파스타를 준비하겠다고 너스레를 떠는 시민’들이 로마를 자랑스럽게 만든다고 애정을 표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로마#약탈과 패배로 쓴 역사#매슈 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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