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하나 밖에 기증 못하는데”…딸·아들 중 선택해야 하는 母

  • 동아닷컴
  • 입력 2021년 1월 8일 19시 30분


코멘트
(왼쪽부터) 아리엘, 노아, 캐스퍼 빙엄. 사진출처=Kidney Research UK
(왼쪽부터) 아리엘, 노아, 캐스퍼 빙엄. 사진출처=Kidney Research UK
장기 이식이 급한 환자에게 기증자가 나왔다는 말처럼 기적 같은 일이 또 있을까. 그런데 영국에 사는 세라 빙엄(48) 가족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

이 가족의 악몽 같은 시간은 2016년부터 시작됐다. 세라 빙엄의 딸 아리엘(16)은 지속적인 피곤함을 느꼈다. 처음에는 학업 스트레스라고 생각했지만 증상이 나아지질 않자 결국 뉴캐슬 병원을 찾았고 검사 결과 신장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했다.

아리엘의 병명은 신결핵증으로 10만 명당 1명 정도 생기는 희소 질환이었다. 딸의 신장 이식을 위해 세라와 남편 대릴(49)은 신장 기증을 위한 검사를 받았고 세라가 적합 판정을 받았다. 대릴은 혈액형이 달라 기증이 불가능했다.

이에 세라는 수술이 필요할 때 딸에게 신장을 주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청천벽력같은 일이 일어났다. 2019년 아들 노아(20)도 아리엘과 비슷한 증세를 느꼈고 병원에서 아리엘과 같은 병명을 진단했다. 아리엘과 다르게 노아는 정기적인 투석으로 안정적인 상태였지만 언젠간 신장 이식을 받아야 했다.

엄마 세라는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딸이 모두 신장 이식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신은 오직 자녀 한명에게만 신장을 기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영 BBC와의 인터뷰에서 “신장 이식이 필요한 두 자녀의 엄마로서 딜레마를 느꼈다”라고 말했다.

그러던 중 이들 가족에게 희소식이 생겼다. 가족의 친구 중 기증자가 나타난 것이다. 현재는 모든 절차가 문제없이 진행된다면 아리엘과 노아는 모두 신장을 이식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소식은 영국 내에서 엄청난 반응을 낳았다. 세라 가족의 이야기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 세라는 “전화벨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신장 기증과 연구비를 기부하겠다는 이도 있다”라며 “이런 격려와 응원은 신장 관련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과 가족들이 얼마나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연구가 계속돼 다른 이들이 우리 가족들이 겪은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노아의 주치의인 뉴캐슬 프리맨 병원의 존 세이어 신장전문의는 “전국에 4500여 명의 사람이 신장이식을 기다리고 있다. 기증자 수가 적어 신장이식을 받기 위해서 평균 3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이에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은 참담하고 두려운 상황에 직면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빙엄 가족 같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라고 기뻐했다.

지금까지 빙엄 가족 곁에서 도움을 준 신장 질병 관련 연구단체인 키드니 리서치 유케이(Kidney Research UK) 마리아 테넌트 박사는 “이식이 필요한 사람 수보다 기증자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투석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투석은 환자에게 정말 힘든 일이다”라며 “코로나19로 인해 어느 때보다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이들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그런 와중에 세라가 이런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줘서 고맙고 신장 관련 질병을 위해 싸우는 우리를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