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임 명창, 8시간 춘향가 완창…국내 최고령 기록 세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1일 2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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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11시 20분 서울 국립국악원 우면당. 고향임 명창(62)이 “고수 팔도 아프실 테요, 고향임의 목도 아플 지경이니, 어질더질(판소리의 마지막에 하는 말로 북소리를 흉내 낸 소리)~”이라며 동초제 춘향가를 마무리했다. 숨을 죽였던 200명의 관객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쳤다. 고 명창의 아들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공연장을 한 바퀴 돌았다. 국내에서 최고령 완창 기록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10년 전 고(故) 박동진 명창과 같은 나이에 완창 기록을 세웠다가 이번에 갈아 치웠다. 고 명창은 오후 2시 소리를 시작해 8시간 25분의 공연 동안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그동안 고수 6명이 바뀌었고 추임새를 넣는 관객들은 신명에 흠뻑 젖었다. 10분씩 4번 중간 휴식 동안 관객들은 떡과 음료로 허기를 달랬지만 고 명창은 물 이외에는 먹지 않았다. 고 명창은 “8시간 이상 완창을 하면 등짝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따른다. 과거 여성들은 힘이 부족해 완창을 엄두내지 못했다”며 “나이가 들면 완창이 더 힘들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인생의 쓴맛과 단맛이 모두 소리에 녹아 숙련미와 완성도는 더욱 높아진다”고 말했다.

동초제 춘향가는 춘향가 가운데서도 가장 긴 8시간 30분 분량이다. 고 명창은 A4용지 308쪽 분량의 사설을 대본 없이 이어갔다. 불과 서너 번 사설을 놓쳤을 뿐인데 그는 이마저도 아쉬워했다. 공연을 지켜본 목원대 최혜진 교수는 “고 명창이 40년이 넘는 소리꾼 생활 동안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음을 이번 공연에서 보여줬다”며 “그는 동초제 춘향가에서 독보적인 존재임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고 명창은 초대 국립창극단장이었던 김연수 명창을 이은 오정숙 명창으로부터 춘향가 외 세 바탕을 전수받았다. 2013년 대전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춘향가를 비롯해 심청가, 수궁가, 흥부가 등을 모두 완창했다. 10월 영국 런던 킹스플레이스에서 개최된 판소리유파대제전에서 공연했고 2018년 10월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우리의 소리를 세계에 알렸다.

고 명창은 “내년 대전문화재단 후원으로 프랑스 파리 공연을 추진 중”이라며 “한국의 문화를 유럽에 전하고 한국 여성의 기개를 선보이기 위해 하루만 쉬고 다시 연습에 돌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판소리는 소리꾼을 넘어 온 국민의 것이어야 한다”며 “대전에 시립전수관을 세워 판소리의 저변을 확대하는 게 꿈”이라고 덧 붙였다.

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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