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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北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까닭…친일파에 신변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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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北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까닭…친일파에 신변위협

뉴시스입력 2019-08-20 17:31수정 2019-08-2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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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 '김원봉 서훈, 무엇이 문제인가' 주제발표
"항일투쟁 28년만에 귀국했지만 테러·암살 위기"
"공산당 따라 옌안 안가고 충칭 임정에 들어가"
"전쟁에서 국군 죽여 훈장 받았다 주장 엉터리“
”보리파종 잘해 받은 노력훈장, 국가훈장 아냐“
"주체사상 최고 이론가 황장엽은 南서 애국자"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맞아 의열단장(의백·義伯)이었던 약산 김원봉의 항일독립혁명을 학술적으로 재검토하는 학술회의가 열렸다. 학술회의에 나선 역사학자와 전문가들은 김원봉을 공산주의자로만 평가하는 일부 언론과 학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추진위)는 20일 오후 2시부터 국회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조선의열단과 약산 김원봉, 100년을 기억하다’를 주제로 국회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회의에서 ‘김원봉 서훈,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약산 김원봉에 대해 “비록 폭탄 성능이 좋지 않아서 23차례 거사에도 성과가 기대만큼 못 했지만,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고 현상금을 많이 내걸던 독립운동가”라고 평가했다.

김 전 관장은 김원봉이 북한으로 간 이유에 대해서는 “1945년 11월 약산을 포함한 우리 임시정부 요인들이 2진으로 (서울로) 귀국했다. 망명생활 28년 만에 귀국을 했는데, 돌아온 조국은 해방 조국이 아니었다”며 “조국은 미군정, 친일파 같은 세력에 의해서 압도되고 그 이후 약산은 주로 친일 세력, 미 군정에 의해서 쫓기는 신분이 되고 테러 암살 위기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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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김원봉이 1948년 4월9일 가족과 함께 북한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 “신변의 위협”을 제시했다. 김 전 관장은 “(김원봉은) 이미 몇 곳에 비밀 은신처를 두고 수시로 옮겨 다니면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경찰의 감시망과 테러에 대한 위협은 날로 가중됐다”고 주장했다.

또 “해방정국은 미국이 단독선거를 통해 남한에서 친미정권을 세우려는 정책이 확고해지면서 중간·좌파세력의 정치적 입지가 없어졌다”며 “김원봉은 더 이상 남한에서 정치적 활동공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 전 관장은 “당시 북한에는 김원봉의 예전 동지들인 조선의용대(군) 옌안파 인물들이 정치적 기반을 잡고 있었다”며 “이들과는 비록 중국공산당 측의 분리정책으로 옌안과 충칭으로 갈라지기는 했지만, 동지적 유대감은 바뀌지 않았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만 김 전 관장은 “김원봉이 만든 의용대의 주류는 중국공산당 지침에 따라 옌안으로 가고(옌안파), 소수지만 김원봉을 비롯한 일부는 중경 임시정부로 찾아갔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러면서 “임시정부로 갔지만, 이런 사람(김원봉)을 일부에서는 공산주의자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전 관장은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약산을 6·25의 원흉, 6·25남침의 핵심역할 등으로 몰아치고 있는 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며 “그는 당시 당이나 군, 정부의 실권에서 밀려나 명목상 한직인 국가검열상이었다”고 밝혔다.

김 전 관장은 “전쟁 시 국군을 많이 죽여 훈장을 받았다는 그들의 주장은 엉터리”라며 “1952년 3월19일 공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훈장 1급 최고훈장’이 아니라, 김원봉이 1951년 북조선 군사위원회 평북도 전권대표 재직 시 평북 지역의 보리파종 실적이 우수하다고, 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두봉이 준 ‘노력훈장’”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북한 통치 이데올로기 주체사상의 최고 이론가로서 주체사상을 해외에 전파한 외교가이고, 북한노동당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의장, 주체사상연구소장, 노동당비서, 노동당국제담 당비서,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황장엽이 1997년 대한민국으로 망명했다”며 “황장엽은 국가정보원 통일정책연구소 이사장, 국가안보정책연구소 상임고문, 전주대학 석좌교수 등 예우를 하고, 이명박 정부는 2010년 그가 사망하자 1등급 훈장인 무궁화장을 추서했다”고 비판했다.

김 전 관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장례위원장을 맡고 유해는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며 “독립운동은커녕 그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던 주체사상가 황장엽에 대한 최상의 예우였다”고 말했다.

김 전 관장은 “독립전쟁의 영웅 김원봉은 용납할 수 없는 공산주의자이고, 주체사상가 황장엽은 무궁화장을 받은 애국자로 추앙하는…”이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요상 동학실천시민행동 상임대표는 “약산의 일생을 통한 사상과 이념은 압제에 대한 항거와 민족의 해방이 그 핵심이었다”며 “해방된 조국은 좌우의 이념이 중심이 아닌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갈 수있는 대동의 세상이었다”고 말했다.

이 상임대표는 “일제에 대한 항거와 해방 후에는 미 군정에 의한 남북 분단을 막기 위한 투쟁이 그것을 반증한다”며 “따라서 약산은 대한의 광복을 위한 길을 걷는다면 누구라도 벗이 될 수 있고 함께해야 한다고 믿었던 분이다. 우리가 잘 아는 중경의 임시정부가 좌우합작 정부였음이 이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조연설을 맡았던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은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불행한 인물이 바로 약산 김원봉”이라며 “민족 독립을 위해서 온몸을 다바친 분인데 환국 후에 남쪽에서 인정 못받고 북쪽가서도 불행했고 그래서 남에서도 잊혀졌고, 북에서도 잊혀져버린 그런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서울=뉴시스】

학술회의에는 추진위 공동위원장인 함세웅 신부와 김원웅 광복회장,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더불어 민주당)을 비롯해 관련 단체장과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이 기조강연과 좌장을 맡아 진행하고, ‘약산 김원봉 평전’과 ‘의열단, 항일의 불꽃’ 등 저서를 집필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과 김주용 원광대 교수가 발표자로 나섰다. 이요상 동학실천시민행동 상임대표, 손염홍 건국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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