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초등생 성폭행 학원장, 강간죄는 왜 인정 안 됐을까?

  • 뉴스1
  • 입력 2019년 6월 21일 06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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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피해자 진술로 폭행 여부 판단 어려워” 의제강간만 적용
판사들 “아이 증언만으로 유죄 인정 안돼…낮은형은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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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만난 10세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대폭 감형을 받은 30대 보습학원 원장에 대해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대법원의 최종 판단에 벌써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이씨는 지난해 4월 평소 이용하던 채팅앱으로 알게 된 A양(당시 10세)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성폭행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서울 강서구 소재 자신의 주거지에서 A양에게 소주 2잔을 먹인 뒤 양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해 성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피해자 A양과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하며 성폭행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1심은 이씨가 폭행·협박으로 A양을 억압했다고 보고 징역 8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A양을 폭행·협박하지 않았다는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강간죄를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직권으로 13세 미만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간음한 경우 폭행과 협박이 없어도 처벌하는 ‘미성년자의제강간죄’를 적용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미성년자의제강간과, 13세 미만의 아이를 대상으로 한 강간죄는 기본 형량부터 차이가 크다. 의제강간은 형법 305조만 적용돼 법정형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반면 13세미만 아이를 대상으로 한 강간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적용돼 무기 또는 징역 10년 이상에 처할 수 있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의하면 의제강간은 기본 2년6월에서 5년 사이를, 반면 강간은 8~12년을 선고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처럼 1심과 2심이 법조항을 다르게 적용한 것은 A양과 A양 어머니의 진술에 대한 두 재판부의 판단이 달랐기 때문이다.

1심은 A양이 술을 마셨고 다소 취한 상태에 이르자 이씨가 자신을 누른 채로 성행위를 했다고 진술한 점을 인정하고, 누른 행위를 폭행·협박으로 봐 강간죄를 인정했다. 또 A양 어머니가 “딸이 이씨가 강제로 성행위를 시도했다고 들었다”는 진술을 전문증거(傳聞證據)로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전문증거는 사실인정의 기초가 되는 경험적 사실을 경험자 자신이 직접 법원에 진술하지 않고 다른 형태에 의해 간접적으로 보고하는 것을 말한다. 이 사건의 경우 사건을 직접 겪은 A양의 이야기를 법원에 대신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진술이 전문증거에 해당한다.

그러나 항소심은 일단 A양 진술만으로 ‘이씨가 손으로 A양의 양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누르는’ 방법으로 폭행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봤다.

A양의 진술은 경찰조사에서 녹화된 영상물이 전부였다. 경찰조사에서 A양이 “이씨로부터 직접적으로 폭행, 협박을 당한 사실은 없다”고 진술했는데, 조사관이 “그냥 누르기만 한 거야?”라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2심 재판부는 이 영상만으로는 이씨가 몸을 누르게 된 경위나 누른 신체부위, 유형력의 정도, A양이 느낀 감정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래서 A양을 증인으로 부르려고 했으나, 출석이 어렵다고 해 증인신문은 이뤄지지 못했다.

어머니 진술에 대한 부분에서도 2심 재판부는 “원 진술자가 사망, 질병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해 진술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닌한 증거능력이 부여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라며 “A양 어머니 진술을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오염되기 쉬운 전문진술의 특성상 증거능력을 인정하려면 엄격한 조건이 붙는다는 것이다.

판사들의 생각은 어떨까. 뉴스1이 취재한 판사들 대다수는 2심 판단도 수긍이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성폭력 사건 전담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부장판사는 “아이들의 진술도 오염될 수 있다. 실제 재판을 해보면 아이들이 주변 환경에 의해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경우도 많다”며 “그런데 아이의 진술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아이의 진술만으로 피고인의 인생이 걸린 문제에서 아이의 말이라 믿어주고 성인이라고 해서 안 믿어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도 “아동성범죄의 유무죄 판단에서 아동 진술이 오염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아동 진술을 안 받아들였다고 해서 욕할 수는 없다고 본다”며 “아동 진술에 따라서만 재판을 했다가는 주변 사람들이 유도를 해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게 되면 멀쩡한 사람이 다 감옥을 하게 되는 결과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어머니의 진술에 대해서도 한 판사는 “피고인도 사실관계를 다투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법정진술이 없으면 피고인의 반대신문권도 박탈된 것”이라며 “피고인의 방어권과 피해자의 보호 두 가지 문제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이라 재판부 입장에서도 난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 가지 문제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사실대로 진술하는 건지, 아이의 진술이 아닌 자신의 의사대로 증언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어머니의 증언을 특별한 사유가 없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을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다만 10세 아이와 성관계를 했다는 측면에서 비난 가능성이 큰데도 재판부에서 양형을 기본으로 해도 5년까지 선고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해 3년만 선고한 것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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