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순간 보고 싶어”…4강전 티켓 약 7배 넘는 금액에 구입하기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2일 1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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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해외 출장 중에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영광이자 짜릿한 감동을 느꼈다.”

한국 남자 축구가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처음으로 결승행을 확정한 날인 12일(한국시간). 경기 시작을 한참 앞둔 시간부터 폴란드 르불린의 ‘아레나 루블린’ 앞에는 한국 응원단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대구에서 섬유 무역을 하는 박규정 씨(53)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사업차 폴란드에 왔다가 “역사적인 순간을 보고 싶어” 사업을 하다 알게 된 지인들과 경기장을 찾았다.

박 씨가 폴란드 바르샤바로 온 날은 한국이 8강에서 세네갈을 꺾은 9일이었다. 비행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연장전 도중 집을 나와 ‘역대급 명승부’였던 승부차기 결과를 뒤늦게 안 게 아쉬웠는데, 그 아쉬움을 에콰도르와의 4강에서 완전히 풀었다는 게 박 씨의 얘기다. 그는 “10년 넘게 폴란드를 연 4회 이상 오고가다 보니 이런 운수 좋은 날도 있다. 애초 현지시간으로 토요일인 15일 오전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했는데 그날 저녁에 열릴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까지 보고 가기 위해 스케줄 변경을 고민하고 있다”며 웃었다.

박 씨와 함께 경기를 지켜본 오중열 씨(59)는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홈페이지에서 티켓을 구하기 어려워 액면가격 30즈워티(약 9400원)인 표를 판매 대행 사이트에서 약 7배의 돈을 내고 구했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 1995년 처음 폴란드에 온 뒤 섬유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한국 선수들을 직접 볼 기회가 없었다. 교민들 사이에서는 이번 대회가 선물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박 씨가 한국에서 온 ‘아저씨파’라면 김상렬 씨(48)는 중학생 딸과 함께 영국 런던에서 바다를 건너 온 ‘가족파’다. 어릴 때부터 축구가 너무 좋아 지금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축구를 보고 있다는 김 씨는 대형 태극기를 꺼냈다. 거기에는 현재 프랑스 여자월드컵에 출전하고 있는 대표팀 선수들의 사인이 쓰여 있었다. 김 씨는 “런던에 살다보니 기성용, 손흥민 선수 등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선수들의 경기는 현장에서 많이 봤다. 이강인 선수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 유소년 팀에 있을 때부터 봐 왔는데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모습은 최고였다”고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날 1만5243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레나 르불린은 관중으로 가득 찼다.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처럼 한곳에 운집해 있지는 않았지만 관중석 곳곳에서는 “대~한민국”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젊은 심장들을 더 강하게 뛰게 만든 또 하나의 힘이었다.

루블린=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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