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기억에서 꺼내놓은 건축가의 공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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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유현준 지음/426쪽·1만5800원·와이즈베리

건축가는 날 때부터 남달랐나 보다. 지나온 공간에 대한 추억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데, 감수성이 예사롭지 않다. 가장 오랜 기억은 마루에 머물러 있다. 기어 다니던 시절 햇빛이 비쳐든 마루와 그곳에서 바라본 마당에서 찬란함을 느낀다. 골목을 점령한 거지들을 보며 느낀 두려움은 이제 연민으로 바뀌었다. “(골목은) 거지들이 도시 속에 앉아 식사할 수 있는 유일한 벤치이자 쉼터였다.”

시간을 거스른 공간 여행은 스쿨버스 창밖으로 보이던 개천, 1974년 1호선 개통 때 시승한 지하철, 국내 최초의 프랜차이즈 치킨 가게, 아빠의 포니 자동차로 이어진다. 공간 하나에 추억 하나. “공간에서 느낀 감정들이 한의원 약초 서랍처럼 여러 개 있고, 그 추억은 건축 디자인에 영감을 준다.”

스무 살 이후 그의 공간은 바다 너머로 확장된다. 미국 보스턴 유학 시절 단골 식당이 사라진 걸 확인하고선 상실감에 빠진다. “내가 즐겨 가던 가게가 사라지는 것은 일종의 수몰지역 난민이 되는 기분이다. … 임대료가 비싸서 원주민 가게가 떠나는 것이 안 좋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이 겹겹이 쳐진 베이징 자금성에서는 조선시대 사신을 떠올린다. “얼마나 주눅이 들었을까. 중요한 공간은 어렵게 되어 있는데 그중의 갑은 자금성이다.”

건축가의 눈은 소소한 공간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우산을 펼치면 현대인이 좋아하는 둥근 천장을 손쉽게 경험할 수 있다.” “2초 텐트는 만화 ‘드래곤볼’의 캡슐주택을 닮았다.” 어린 시절을 보낸 장소는 그 시절의 나와 대면한다는 점에서 공간의 마법 정점에 놓여 있다.

저자의 눈으로 세상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시절을 거쳐 간 아지트들이 증강현실처럼 눈앞에 병풍을 두른다. 필요할 때 꺼내볼 ‘공간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라는 메시지도 마음에 든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유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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