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크 전 뉴질랜드 총리 “여성에게 레드카펫 깔아주는 사회는 없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5일 22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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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 순위 100위 권 밑 한국…여성 정치인 더 나와야”

헬렌 클라크 전 뉴질랜드 총리. 사진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헬렌 클라크 전 뉴질랜드 총리. 사진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한국 양성평등 순위가 118위이더군요. 한국의 저력에 비해 너무 낮습니다.”

13일 서울 용산구 뉴질랜드대사관저에서 만난 헬렌 클라크 전 뉴질랜드 총리(69)는 “한국 여성의 정치 참여가 더 필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세계경제포럼(WEF)의 젠더 격차 지수를 언급했다. WEF 지수에서 한국은 2017년 118위, 지난해 115위에 그쳤다. 국내에서 순위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고 전하자 클라크 총리는 “그러면 한국 여성 의원, 기업 임원 비율이 어떻게 되냐고 되물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현재 한국 여성 의원은 17%(2019년), 기업 임원은 2.4%(2017년)에 그친다.

클라크 총리는 1999년 뉴질랜드에서는 두 번째 여성 총리가 돼 2008년까지 총리직을 3번 연임한 인물이다. 첫 여성 유엔개발계획(UNDP) 총재이기도 한 그는 임기 중 출산휴가로 화제가 된 현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의 정치적 멘토로도 유명하다. 세 번째 여성 총리를 맞고 있는 뉴질랜드는 여성 의원비율이 40%가 넘을 만큼 여성 정치 참여가 높은 나라로 꼽힌다.

헬렌 클라크 전 뉴질랜드 총리. 사진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헬렌 클라크 전 뉴질랜드 총리. 사진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클라크 총리는 1994년 첫 방문 이래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두루 만났다. 12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그는 이번 방문에서(13일 이화여대 토론회, 14~15일 글로벌지속가능발전 포럼 등) 특히 젠더 문제, 여성 리더십 등을 주로 강연했다. 그는 “페미니즘의 여러 문제 중에서도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획득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다른 대안이 없다면 저는 할당제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의 변화는 너무 느립니다. WEF에 따르면 직장에서 양성 평등을 이루려면 20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의회의 경우 99년이 필요하다고 하고요.”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한국에서 여성 정치인에 대한 회의가 많아진 상황에 대해서는 “남성이 그렇듯 모든 여성이 다 성공할 수는 없다”며 “오히려 더 많은 여성이 정치에 도전하고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헬렌 클라크 전 뉴질랜드 총리. 사진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헬렌 클라크 전 뉴질랜드 총리. 사진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후임으로 2016년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클라크 총리는 당시 언론에서 강력한 사무총장 후보로 언급됐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미국 중국 등의 반대를 받았고 결국 포루트갈 총리 출신 안토니오 구테레스가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됐다. 그의 유엔 사무총장 실패담은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중심 운영 구조와 여성정치인에 대한 배제 분위기를 다룬 다큐영화 ‘헬렌의 도전(My year with Helen, 2017)’으로도 나와 화제가 됐다. 그는 “유엔 사무총장(secretary general)의 역할을 수장(general)보단 비서(secretary)로서 부분을 더 강조하는 분위기가 있다. 상임이사국에 입바른 소리를 하는 강한 여성을 원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 13일 서울 용산 CGV아이파크에서는 CJ그룹 후원으로 ‘헬렌의 도전’ 상영회도 열렸다. 200석이 꽉 채운 관객 중에는 젊은 여성이 대다수였다. 클라크 총리는 “최근 한국을 찾을 때 젊은 전문직 여성들이 늘었음을 느낀다. 한국 여성들이 목표를 더 높이 잡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길 바란다”며 “도전하는 것 못지않게 실패했을 때 회복하고 일어나는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젊은 여성들이 어떤 곳은 닫힌 문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길 바랍니다. 목표를 높이잡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않길 바랍니다. 여성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주는 사회는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책임감을 가지고 나서야죠.”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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