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일본…‘혐한’과 ‘지한’, 그들의 모습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2일 15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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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스토리’
영화 ‘허스토리’
며칠 전 경기 고양시에 있는 저유시설에 큰 불이 나서 화재의 원인으로 지목된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 노동자가 체포되는 일이 있었다. 안전관리부실이 더 큰 문제였다는 여론이 비등하면서 청와대 게시판에는 그 외국인 젊은이를 두둔하는 청원이 잇달아 올라왔다. 그에게 엄하게 죄를 물어야 한다는 청원도 여러 건 게시되었지만 청원의 수나 호응도를 보면 동정 여론이 더 우세해 보인다.

지난 5월에는 내전을 피해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인이 난민 심사를 신청한 것이 알려지면서 난민 문제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청와대 게시판에는 수백 건의 관련 청원이 올라와 있다. 난민을 돕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는 호소가 있는가 하면 예멘 난민을 북한에 보내자는 조롱도 있다. 그러나 청원의 수나 호응도를 보면 동정보다 경계심이 더 큰 것을 알 수 있다. 예멘 난민 문제와 이번 풍등 사건은 외국인 난민과 노동자를 향한 한국 사회의 다양한 시선과 복잡한 심경을 잘 보여준다. 외국인 친구가 나에게 난민을 보는 한국인의 시선이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한마디로 정리해서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람에 따라서 사안에 따라서 그리고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의견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인의 의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오래 전에 일본인 제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조금 무거운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나는 일본에 온 후로 서로 다른 일본의 얼굴을 본다. 과거의 침략 사실에 대해 몹시 부끄럽게 여기는 일본인이 있는가 하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일본인도 있다. 내가 일본에서 본 서로 다른 두 개의 얼굴 중에 어느 것이 진정한 일본의 얼굴인지를 물었다. 우문에 현답이라고, 나는 한 학생이 한 대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왜 일본이 하나의 얼굴만 가져야 하는지, 서로 다른 다양한 얼굴이 모두 일본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 그 학생의 요지였다. 나는 오래된 숙제를 해결한 기분이 들었다.

내 아내가 알고 지내던 이웃의 한 일본인 여중생이 어느 날 아내를 보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한 아내에게 학생은 연신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겨우 울음을 멈춘 학생의 얘기는 바로 그날 학교에서 일본이 과거 한국을 침략한 사실을 들었고 그래서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는 것이다. 일본에 20년을 살면서 나는 그 여중생과 같은 이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 반면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는 이들, 어쩔 수 없는 역사의 선택이었다는 이들도 적지 않게 만났다. 나는 이제 그것이 일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본을 좋아할 것인지 싫어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대신 인격을 신뢰하고 서로 존중할 수 있는 일본인과 친구가 되려고 한다.

그래서 최근 영화 ‘허스토리’를 둘러싼 작은 소동에 마음이 아프다. 허스토리는 관부재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고, 관부재판은 위안부 및 정신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으로 시작된 재판이다. ‘전후 책임을 묻고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라는 일본의 시민단체는 관부재판의 한국인 원고들을 지원한 단체이다. 그들은 영화의 내용이 재판의 진실을 왜곡했고 그래서 피해자들에게 다시 한 번 상처를 입혔다고 항의했다. 상업영화가 흥행을 위해 사실이 아닌 극적 장치를 배치하는 것을 나무라기는 어렵지만, “절대로 픽션화해서는 안 되는 진실이라는 것이 세상에는 존재합니다. 바로 원고인 피해자가 목숨을 걸고 법정에서 호소한 피해사실입니다”라는 그들의 호소에는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보도한 기사의 베스트 댓글은 일방적으로 그 시민단체를 비난하고 있었고, 거기에는 8000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려 있었다. 지난 수년간 근거 없는 혐한이 흑주술처럼 퍼지는 것을 목격한 나로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혐일 역시 두렵고 안타깝다. 한국에도 일본에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친구가 될 수 있고 연대할 수 있고 언젠가는 평화롭게 공존하는 한국과 일본에서 웃을 수 있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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