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순덕칼럼]질투는 나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03년 7월 4일 18시 00분


참 이상하다. 아이들에겐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라고 가르치면서 남한테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강조하며 발목까지 잡다니.
말인즉 옳다.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배웠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슬프게도 이기적이다. 이들은 자식더러는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 가라면서 밖에 나가선 학벌차별 철폐를 주장한다. 정직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대우받는 사회를 원하면서 정직하게 노력한 결과 잘나가게 된 사람의 기득권은 인정하기 싫어한다.
이들 집단이 보기에 경쟁은 악이고 보호는 선이다. 당장 일자리가 없는데도 일거리 주겠다는 외국기업을 막기도 한다. 개인의 선택과 책임보다 집단적 해결을 중요하게 여긴다. 성장론은 수구세력의 음모이며 분배가 정의라고 믿는다.
▼평등은 언제나 옳은가 ▼
이 같은 심리의 바탕엔 질투, 그 모순의 변증법이 있다. 한국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서 나타나듯, 질투는 상대를 혐오하면서도 그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이중적이다. 무엇보다 상대가 나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못 견딘다.
인류에게 유례없는 풍요와 함께 불평등이라는 반갑잖은 손님을 안긴 것이 우리가 채택한 자본주의다. 특히 글로벌 지식정보사회는 소수의 유능한 인재에게 능력발휘 기회를 몰아주면서 임금격차를 벌려놓았다. 승자독식 법칙에 VIP만을 위한 재테크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한층 심해졌다.
빈부차가 개인의 실력과 노력의 대가이고 부자 될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면 그건 정당한 불평등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타고난 재능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게 과학적 연구결과 밝혀진 판에 모두가 평등하다면 그게 되레 불공정하다.
그러나 개발도상국, 그중에서도 법이 엄중하게 지켜지지 않는 나라에서의 큰 부자는 정치적 영향력에 의해 탄생한다고 페루의 경제학자 에르난도 드 소토는 지적했다. 정경유착과 권력자의 부패로 수백억, 수천억원이 오가는 건 우리도 익히 봐 왔다. 떳떳하게 가진 자까지 개혁대상으로 몰리는 것도 이들 탓이 크다.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은 국가 권위가 느슨해지고 경제가 나빠지는 사회적 격변기에 터져 나온다. 요구와 갈등이 폭발한 이 시기에 절묘하게 떠오른 새 구호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다.
지금보다 두 배나 잘살게 된다니 상상만 해도 황홀하다. 문제는 방법이다. 자유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측에선 파이를 2만달러로 키운 뒤 나누는 것이 적절하다고 믿고 있다. 지난 40년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을 백배로 늘려준 것이 시장경제였고 앞으로도 이를 대체할 체제는 나오기 힘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분배도 고성장기에 활발해진다는 사실이 1980년대 중반 벌써 입증됐다.
그런데 대통령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최근 대통령은 공무원들에게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선 국가와 사회를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모두의 사고와 행동양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 모델은 내놓지 않았으되 당시 발언에 따르면 ‘항상 미래의 새로운 보람과 가치를 찾는다는 전향적이고 능동적 자세’로 변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현실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갖고 있다간 중국 문화혁명 때 지식인처럼 인간개조 대상이 될까봐 섬뜩해진다.
▼불평등은 성장의 원동력 ▼
지금 정작 필요한 일은 국가개조가 아니다. 기업을 인위적으로 개조하거나 새마을운동식 의식혁명을 꾀하는 것도 반갑지 않다. 정부가 현재 있는 법과 원칙을 철저하게 집행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경제도 법질서가 잘 지켜지는 나라에서 빨리 성장한다고 했다.
2만달러 시대를 위해서든,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든 국가가 집중할 일은 개개인이 지닌 능력을 한껏 계발하도록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게 우선이다. 그 능력을 펼쳐 보일 공정한 기회와, 노력에 따라 계층상승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모두에게 열어주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라고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강조했었다.
위기가 기회이듯 질투도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 노력과 기여도에 따라 성과가 주어지는 불평등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이를 바라보는 건강한 질투는 개인의 성장을 이끌지만 남을 해코지하는 질투는 다 함께 못사는 사회를 만들 뿐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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