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순덕]여자들의 반역

  • 동아일보
  • 입력 2005년 10월 21일 03시 08분


인구가 줄어든다고 난리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던 게 엊그제인데 이젠 아이 안 낳거나 하나만 둔 엄마들을 이기주의자처럼 몰아붙인다. 출산장려세(稅)까지 걷어 나눠주겠다니 괜히 세금만 뜯기지 않으려면 폐경 전에 서둘러야 할 모양이다. 낳기만 하면 아이가 저절로 크는 줄 아는 무책임한 남편 같다.
독일의 경우, 1990년 10월 통일이 되면서 90%나 되던 구(舊)동독의 취업 여성 3분의 1이 일자리를 잃었다. 여자들은 즉각 ‘절전(節電)모드’에 들어갔다. 수입이 줄자 여자가 자기 몸으로 할 수 있는 경제행위, 아이 안 낳기를 시작한 거다. 1989년 서독보다 높았던 1.56의 합계출산율이 1994년까지 절반으로 떨어졌다. 실업률이 옛 서독보다 높은 지금도 그곳은 독일 전체의 출산율(1.34)을 밑돌고 있다.
남의 나라를 들먹인 이유는 간단하다. 살림살이가 좋아지지 않는 한, 정부의 ‘저출산 종합대책’만 믿고 아이 낳을 엄마들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많이 배우고 직장 가진 잘난 여자가 늘면서 저출산 문제도 심각해졌다는 통념은 ‘신화’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대졸 이상 엄마의 자녀는 평균 1.6명, 초등학교 학력의 엄마는 2.3명이지만 전업주부(1.7명)보다 취업주부(1.8명)의 아이가 더 많다. 고학력 취업 여성의 저출산 경향은 2000년 이전에 뒤집혔다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밝혔다. 양성평등 의식과 제도가 잘 될수록 출산율도 높아진다. ‘페미니스트 패러독스’다(우리같이 남녀의 성평등 의식이 다르거나, 제도가 의식을 못 따를 때 출산율이 가장 낮다).
자식 하나 마음 놓고 못 낳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에서 찾아야 한다. 인구정치학자인 버지니아 딘 애버니티는 가난이 닥치거나 닥칠 기미만 보여도 인간은 임신과 출산을 피한다고 했다. 기근이 들자 피임약 없이도 출산을 조절했던 19세기 유럽이 한 예다.
“먹고살기 힘든 옛날에도 대여섯씩 잘만 낳았다”는 어른들도 있다. 그러나 현재 살기 좋은가 나쁜가는 나 아닌 부모 세대를 기준으로 친다. 내가 부모보다 잘살 것 같으면 경제가 발전하는 중이고, 아니면 아닌 거다. 2003년 1.19였던 출산율이 지난해 1.16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추락한 것도 체감경제와 무관하지 않다.
더구나 농경시대와 달리 지금은 자식만 한 ‘시간 소모형 상품’이 없다. 예전 아이들은 저 먹을 건 타고났다는데 요즘 아이들은 공부시켜 시집장가 보낸 뒤에도 부모 등골을 빼먹으려 든다. 여론조사마다 육아·교육비 부담에 출산을 포기했다는 응답이 제일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아이 셋이면 대학 특례입학에 장학금도 달라”는 요구가 나오는 판에 어떤 엄마가 5만 원도 안 될 정부 보육비만 믿고 아이를 더 낳을 성 싶은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저출산이 계속될 경우 참여정부가 강조하는 양극화 해소는 절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출산이 줄어 노동력도 줄면 특히 저숙련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가 빈곤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기 전에 고령사회가 닥쳐 경제가 무너질까 걱정이지만.
‘힘들어서 못 살겠다’는 여자들의 아우성이 출산 감소 현상에 담겨 있다. 나라가 팽개친 내 아이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엄마들은 두셋 낳을 걸 하나로 줄여 전력투구한다. 과거 ‘민주화 세력’의 정권 퇴진 투쟁과도 맞먹는 도전이고, 반역이다.

정부가 정말 이 문제를 우려한다면 출산장려보다 경제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 1740년대 아일랜드에 감자 경작이 도입되면서 출산율이 오른 것처럼, 희망이 생겨야 2세도 낳는다. 나라를 앞이 안 보이도록 만든 집권층이 “산 자여 따르라”를 부를 때 수많은 미래의 엄마들은 ‘아가야 태어나지 마라’는 소리 없는 자장가를 부르고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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