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 비극’ 얼마나 됐다고…서울 방재지구 한 곳도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4일 11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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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발생한 폭우로 인해 반지하집이나 지하주차장 등 지하공간이 침수되면서 적잖은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기상이변으로 인해 이러한 피해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도 이를 우려해 종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침수피해 예방을 위해 수립된 방재지구나 침수위험관리지구(이하 ‘침수지구’) 지정 등과 같은 현행 정부 대책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최근 폭우로 인한 인명 피해가 잇따랐던 서울의 경우 방재지구로 지정된 곳이 한 곳도 없는 등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이에 따라 관련 제도를 재정비하고, 지하공간 침수 예방을 위한 차수판 등 물박이 설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 전반적인 제도 보완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보고서 ‘이슈와 논점-지하공간 침수방지 관련 제도 및 개선과제’를 발행했다.

● 차수벽 설치 의무화나 세금 감면 마련돼야


24일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침수피해를 막기 위해 현재도 자연재해대책법, 건축법,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등 다양한 법률을 운영 중이다. 또 지방자치단체는 조례를 통해 침수피해 예방 대책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부산시 동래구와 부산진구, 경기 의정부시, 경남 창원시, 충북 충주시 등으로, 침수방지장치 설치를 지원하기 위한 조례를 별도로 제정해 운영 중이다. 특히 부산시 동래구는 2014년부터 침수가 우려되는 주택이나 소규모 상가 등 584개 지역의 차수판 설치를 지원했다. 그 결과 2020년 집중호우에 300건 이상의 피해가 발생했지만 차수판 설치 지역에서는 한 건도 없었다.

입법조사처는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관련 법 개정 등을 통해 차수판 등 물박이 설비 설치를 의무화하거나 설치를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지원 방안은 직접적인 비용 지원보다는 세금 감면 등과 같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막이 설비 설치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과 가이드라인도 마련해야 한다. 현행 관련 기준에서는 물막이설비 규격 및 설치 장소 등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 방재지구 지정기준 재정비 필요



여기에 물박이 설비 설치가 의무화된 방재지구나 자연재해위험지구로 지정하는 요건 등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지정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어서다.

현행 관련 규정(‘국토계획법 시행령’ 제 31조 제4항)에 따르면 방재지구는 연안침식관리구역으로 지정된 지역과 풍수해·산사태 등의 동일한 재해가 최근 10년 이내 2회 이상 발생하고, 인명 피해를 입은 곳이면서 앞으로 동일한 재해 발생 시 상당한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인 경우 지정한다.

이런 조건에 따라 2021년 전국에 방재지구로 지정된 곳은 11곳(2.64㎢)이다. 올해 여름에 지하공간 침수피해가 심각했던 서울시의 경우 2019년 방재지구 5곳을 해제하고, 현재는 방재지구로 지정된 곳이 한 곳도 없다.

침수지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관련 규정(‘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관리지침’)에 따라 대상지역은 하천의 범람 등으로 침수 피해가 발생해 인명 및 건축물·농경지 등의 피해를 유발했거나 침수피해가 예상되는 곳으로 제한돼 있다.

올해 10월 현재 이런 기준을 갖춰 침수지구로 지정된 지역은 전국에 모두 635곳. 하지만 올해 침수피해가 발생한 서울의 경우 양천구 신월동, 강서구 개화.화곡1.화곡2동, 서초구 서초.방배동 등 6곳에 불과하다.

반면 상습침수지역이면서 올해 8월 집중호우에 가장 큰 침수피해를 입은 강남구, 관악구, 동작구 등과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시 피해를 입은 주요 지역인 광화문과 청계천 일대, 관악구 도림천 등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입법조사처는 “침수피해 자료 등 관련 기초자료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방재지구와 침수지구 지정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량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침수흔적도 작성 관리 강화해야


침수흔적도의 작성과 관리도 강화해야 한다. 침수흔적도는 태풍, 호우, 해일 등 풍수해로 인해 침수피해가 발생한 지역에 대한 침수흔적조사를 통해 침수심 등을 표시한 재해지도인데, 각종 자연재해 예방대책을 마련할 때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2006~2021년까지 작성된 침수흔적도는 전국적으로 167개 시군구에서 8996곳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거의 매년 침수피해가 발생하는 서울의 경우 2017년 25개 구 가운데 노원구 1곳에서만 11개 지역에 대한 침수흔적도를 작성했을 뿐이다.

특히 영등포구나 동작구, 관악구, 서초구, 강남구 등은 침수흔적도가 아예 없다.

입법조사처는 “지자체장이 침수 발생 지역에 대한 침수흔적도를 충실히 작성 관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본적이고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방재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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